유신·광주학살에 맞선 '실천하는 지식인' '송기숙 작가 별세

박준배 기자 2021. 12. 6. 15:5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하소설 '녹두장군'과 장편 '암태도' 등을 쓰며 민족문학의 중추역할을 담당해 온 송기숙 작가가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분단현실과 민중의 삶을 깊숙히 파고든 중량있는 작품을 발표한 민족문학 작가이자 유신 정권과 군부독재에 맞서 싸운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199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맡았고 1996년 전남대 '5·18연구소'를 설립해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1972년 첫 소설집 '백의민족'을 묶어내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뉴스1 © News1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대하소설 '녹두장군'과 장편 '암태도' 등을 쓰며 민족문학의 중추역할을 담당해 온 송기숙 작가가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분단현실과 민중의 삶을 깊숙히 파고든 중량있는 작품을 발표한 민족문학 작가이자 유신 정권과 군부독재에 맞서 싸운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고인은 1935년 전남 완도군 금당면 육산리에서 태어나 네 살 무렵 전남 장흥군 용산면 모산리 포곡마을로 가족 모두 이주했다.

전남대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마치고 목포교육대학을 거쳐 1973년 모교인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1978년 유신 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며 동료 교수 10명과 함께 '우리의 교육지표'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4년형을 받았다.

1년간 복역한 뒤 석방됐으나 다른 교수들과 달리 복직이 되지 않은 채 5·18 광주민중항쟁을 맞았다.

5·18민중항쟁 과정에서 시민군 협상대표인 수습위원으로 활동하다 내란죄로 구속돼 다시 1년을 복역했다.

해직 7년 만인 1984년 8월에 복직했으며 2000년 8월 정년퇴직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며 소설을 썼다.

1987년 '5·18광주민중항쟁 사료전집'을 발간하고 같은 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를 창립해 초대 의장을 지냈다.

199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맡았고 1996년 전남대 '5·18연구소'를 설립해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작가 송기숙의 시작은 평론이었다. 1965년 평론 '이상서설'로 데뷔했고 1960년대 후반 단편 '어떤 완충지대' '백의민족 1968' 등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한다

1972년 첫 소설집 '백의민족'을 묶어내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1977년에는 일제강점기에서 4·19혁명까지를 배경으로 소작농들의 수난과 싸움을 그린 첫 장편 '자랏골의 비가'를 출간했다.

그 뒤 소설집 '도깨비 잔치' '개는 왜 짖는가' '들국화 송이송이' 등과 장편 '암태도' '녹두장군'(전12권) '오월의 미소' 등을 발표했다.

1972년 제18회 현대문학상(백의민족), 1994년 제9회 만해문학상, 1995년 제12회 금호예술상, 1996년 제13회 요산문학상, 2019년 제12회 후광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애씨와 자녀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했다. 코로나19로 조문은 받지 않고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발인은 7일 오후 1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nofatejb@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