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쪽방촌 덮친 코로나.. "공용화장실뿐인데 재택치료하라니"

송복규 기자 2021. 12. 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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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현실 외면하는 방역대책
환기 안 되고 화장실·샤워실은 공용
자가격리 불가능한데 재택치료 하라며 외면
"생활시설 분리 안 돼 밀접접촉자 확진 늘어"

코로나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가운데 쪽방촌 주민 등 주거 취약계층은 방역 사각지대에 몰린 채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촘촘한 주거환경과 공용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자가격리조차가 불가능하다. 지난 5일 영등포와 돈의동 쪽방촌 현장에 다녀왔다.

지난 5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골목 모습./윤예원 기자

지난 5일 오후 3시에 만난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은 “이곳은 공용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어 자가격리나 재택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공용화장실은 쪽방촌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공터에 있었다. 남녀 화장실은 분리돼 있었고, 샤워시설은 별도의 건물이 있었다. 주민들은 마스크를 낀 채 화장실을 이용했다.

한 평 남짓한 방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환기할 수 있는 창문도 없었다. 근처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은 6일부터 10일까지 코로나로 쉰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홈리스 센터는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폐쇄됐다.

지난 5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거주민들이 이용하는 공용화장실./윤예원 기자

이곳에서 만난 영등포 쪽방촌 주민 A(60)씨는 “쪽방촌은 코로나와 관련해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일단 집에서 자가격리나 재택치료를 해야 하는데, 잘못된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쪽방촌을 일반 가정집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며 “쪽방촌 주민들에게 자가격리나 재택치료는 말 그대로 ‘화장실도 가지 말고 꼼짝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 거의 다 공용화장실을 사용하는데 재택치료를 어떻게 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최근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집은 괜찮다고 생활치료센터로 데려가지도 않았다”며 “사생활이니 간섭할 수도 없고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의 한 평 남짓한 방./윤예원 기자

또 다른 주민 이모(74)씨는 “요즘 자가격리됐다가 증상이 있어서 시설로 끌려가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며 “재택치료를 하라는데 화장실이 공용이다. 그냥 집에서 볼일 볼 수는 없지 않냐”며 황당해 했다. 그러면서 “영등포 쪽방촌에서 코로나 환자를 지금까지 30명 정도 본 것 같다”며 “거주민들이 65세에서 70세라서 아무래도 면역력이 약한데, 현대판 고려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 역시 코로나에 감염될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코로나 심해 얼른 가! 농담 아니야. 코로나 때문에 여기 오면 안 돼”라며 손사래를 쳤다. 쪽방촌 입구에서 만난 중년 남성 역시 “1미터(m)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달라”며 “코로나 심하니 빨리 여기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지난 10월 코로나를 앓았다는 돈의동 쪽방촌 주민 김모(53)씨는 “어제도 4시쯤 누구 한 명 코로나로 실려 갔다”며 “지금 병상이 없어 시설로 끌려가는 건데, 나도 10월 말에 코로나 걸려 정말 죽을 뻔했다”고 했다.

6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 모습./송복규 기자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60세 이상 고령이라 3차 백신 접종 대상자다. 정부가 12월 한 달을 60세 이상 고령층의 ‘3차 접종 집중기간’으로 운영하기로 했지만, 자신이 접종 대상자인 줄도 모르는 경우도 주민도 많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 이모(79)씨는 “여기 나이 먹은 사람들 중에서도 3차 접종 진행 중인 사람들이 있는데, 고령층은 집에만 있다 보면 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해 맞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돈의동 쪽방촌에서는 최근 코로나에 걸렸지만, 시설에 입소하지 못해 쪽방촌 사무실에 방치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돈의동주민협동회 사무실에는 코로나에 확진된 70대 노인 강모씨가 며칠 동안 머물렀다. 그가 기침 등 코로나 증상을 보이자 집주인이 쫓아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돈의동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방치된 환자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 후 대책 마련을 하고 있다”며 “쪽방촌 상황과 괴리감이 있는 코로나 대책에 대해서는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쪽방촌 활동가들은 생활공간을 분리할 수 없는 환경이 쪽방촌 거주민들을 방역 사각지대로 몰아넣는다고 지적한다.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는 “쪽방 같은 경우는 통로가 하나고, 내부에서 방을 쪼개 환기가 한 쪽 통로를 향해서 흐를 수밖에 없다”며 “무엇보다 비좁고 밀도가 높아서 누가 확진되면 거리가 가까우니까 감염될 확률이 비교적 높다”고 강조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쪽방촌은 ‘집’이 아니라 ‘방’인데, 기본적으로 방에서는 밀접접촉자와 주민들을 분리할 수 없다”며 “돈의동 쪽방촌에서 환자가 방치됐다는 얘기가 나온 후 전수조사를 했는데, 주민 17명이 더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서울시가 쪽방촌 거주민 감염자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방역과 복지가 함께 가야 하는데, 서로 자신의 담당이 아니라고 미루다 보니 확진자들이 방치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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