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P] 시대정신이 실종된 2022 대선, 이유 있다
시대정신이 실종된 이유로 양 후보 간 극단적인 비호감 대결을 꼽는 분석이 가장 많다. 정책이나 비전을 두고 경쟁하기보다는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면서 지지율을 높이려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거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지금 양당 후보 모두 비전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화두가 되고 있는 건 의혹뿐"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보다 배우자나 영입 인재의 사생활 의혹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양당 모두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만 몰두해서 표를 계산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지엽적인 집단별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만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이대남, 이대녀를 '갈라쳐서' 누가 더 많은 표를 가져오는지에 따라 정치적 스탠스(입장)를 바꿔가는 행태가 이번 대선에서 뚜렷하게 발견된다. 그는 "이걸 정치적 미분이라고 하는데 두 후보 모두 중도 확장을 얘기하면서 중도가 뭔지, 어떤 걸 원하는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지금은 정권 교체 혹은 정권 재창출을 둘러싼 대립 에너지가 워낙 커서 블랙홀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더 나아가 윤 실장은 "많은 의제들이 정치·사법적 논쟁이 되면서 시대정신을 가리고 있다"며 "예를 들어 환경이란 의제는 탈원전을 거치면서 정치화가 되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문재인정부 들어 집값이 폭등하면서 다른 정책에는 유권자들이 관심을 잃고 오로지 부동산 정책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지역 민주당 의원은 "지역구에 가면 부동산 얘기밖에 안 한다"며 "집 살 수 있느냐, 세금 얼마나 내게 되느냐고 물어보는데 다른 의제들이 끼어들 여지가 있겠냐"고 토로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와 민생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절실하다는 점도 시대정신 실종 이유로 꼽힌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코로나19 위기상황이 전대미문으로 지속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모이기 쉽지 않다"며 "그러다 보니 정치적인 용어를 집결시켜 시대정신을 말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선두에 서 있는 위치가 된 만큼 처한 상황도 복잡해졌다"며 "한 가지 슬로건으로 시대정신을 논하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봤다.
당초 시대정신은 승리자의 슬로건이란 설명도 있었다. 한 정치 싱크탱크 연구소 관계자는 "시대정신이란 말 자체가 과장"이라며 "선거에서 이기는 사람의 슬로건을 시대정신으로 갖다 붙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87년도 대선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붙었는데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겨서 보통사람이 시대정신으로 정리된 것"이라며 "시대정신이란 사후적 평가일 뿐, 사전적 시대정신은 없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에서 손학규 후보의 '저녁 있는 삶'도 크게 화두가 됐으나,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당시의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시대정신을 외치고는 있다. 민주당은 양극화 해소를 시대정신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혁신 성장과 양극화 해소가 시대정신일 수밖에 없다"며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치고 나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기도 하지만, 성장의 분배를 어떻게 할지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도 같은 이유로 격차 해소가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에서 실행했던 정책들을 되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국민의힘 3선 의원은 "상식이 곧 경제"라면서 "문재인정부에서 모든 게 비상식적으로 돌아가면서 경제를 망쳤다. 경제 살리기는 상식 회복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시대정신으로 꼽으면서 "문재인정부는 미래 세대와 국민에게 부담을 잔뜩 안겼고 민간의 활력을 죽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중 잣대로 자신들의 부정은 부정이 아니라는 터무니없는 행태로 유권자들을 분노하게 했다"며 "그런 모든 면에서 공정과 상식 회복이야말로 시대적 과제"라고 재차 강조했다.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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