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더 드레서', 인생은 계속 되어야 한다

박지현 2021. 12. 6. 15: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여기 한 평생을 연극에 바친 노배우가 있다.

수만번 무대 위에 오르고 내리는 사이 머리에는 하얀 눈이 내렸다.

2차 세계대전으로 그가 사는 도시 위에, 그리고 그의 연극이 오르는 극장 위에 언제 포화가 터질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다.

극단주이기도 한 그에게 연극은 삶을 이어가는 생계 수단이기에 오늘의 공연을 꼭 지켜내야 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극 '더 드레서' / 사진=정동극장
여기 한 평생을 연극에 바친 노배우가 있다. 수만번 무대 위에 오르고 내리는 사이 머리에는 하얀 눈이 내렸다. 인생의 수많은 시간 속 실제 그 자신으로서 살아온 시간보다 환상과 같은 연극 속의 인물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고, 집에서 잠자고 밥먹는 시간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극장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은 전쟁과 같다. 그런데 어느날 실제 삶 속에서도 전쟁이 터진다.

2차 세계대전으로 그가 사는 도시 위에, 그리고 그의 연극이 오르는 극장 위에 언제 포화가 터질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다. 극단주이기도 한 그에게 연극은 삶을 이어가는 생계 수단이기에 오늘의 공연을 꼭 지켜내야 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동료들의 삶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하루 무대를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함께 했던 배우들이 떨어져 나가고 최소의 사람들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어느 날 아침 그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의 동료이기도 한 아내는 공연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일같이 분장실에서 그의 의상을 챙겨오던 노먼은 관객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예정대로 공연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먼에게 있어 보잘것 없는 자신의 삶의 존재이유는 바로 이 '드레서'라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더욱 공연이 멈춰선 안 된다.

매일같이 읊어왔던 첫 대사부터 가물가물하고 패닉이 찾아오는데 공연 5분 전엔 공습경보까지 울린다. 그래도 여차저차 무대에 오른다. 노배우는 생의 마지막 힘을 다해 227번째 리어왕으로 분한다. 노먼은 그를 위해 끝까지 돕는다.

지난 1980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초연된 연극 '더 드레서'가 1년만에 다시 서울 정동극장에서 공연중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면서 예정됐던 48회의 공연 중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종연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주인공 '선생님' 역에 배우 송승환이 지난 시즌에 이어 단독으로 캐스팅됐고, 의상 담당자 노먼 역에 배우 오만석과 김다현이 캐스팅돼 번갈아 송승환과 합을 맞추고 있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60대 중반으로 거장 배우의 반열에 오른 송승환이 직접 선택한 이 작품을 보면 배역 너머 실제 그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비춰지면서 동시에 각자의 삶 또한 돌아보게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주어진 인생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이들의 눈물나는 분투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공연은 2022년 1월 1일까지.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