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서도 고조되는 美·中 군사긴장.."해군기지 놓고 신경전"

박수현 기자 입력 2021. 12. 6. 13:21 수정 2021. 12. 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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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아프리카 중서부에 있는 적도 기니 연안에 해군 기지 건설을 시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이 실제 이 지역에 군사 시설을 마련할 경우, 중국 군함은 사상 처음으로 미 동부 해안 반대편에 영구 상주하게 된다. 양국 군사 갈등의 무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이어 북대서양 지역으로까지 넓혀질 모양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 시각) 미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존 파이너 미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지난 10월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적도 기니 대통령(79)과 그의 아들 테오도린 응게마 오비앙 망게를 접견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은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는 당시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적인 도전을 해결하고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과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파이너 부보좌관을 오비앙 대통령에게 보내 ‘중국의 제안을 거절하라’고 설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중국은 적도 기니 내 항구도시인 바타에 군사 기지를 세울 의도를 갖고 오비앙 대통령과 그의 아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왔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한 후계 작업을 벌이고 있는 오비앙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타에 심해 상업항구 시설과 중앙아프리카 내륙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도 건설했다.

WSJ는 “미 정보기관이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처음 포착한 것은 2019년의 일”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행정부는 이를 확인한 즉시 국방부 고위 관리를 적도 기니에 파견했으나 오비앙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파이너 부보좌관을 통해 ‘미·중 글로벌 경쟁의 최전방에 끼어드는 것은 근시안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적도 기니의 항구도시 바타를 위성으로 촬영한 모습. /막사테크놀로지

바이든 행정부는 이와 동시에 적도 기니와의 관계 구축에도 나섰다. 지난 3월 바타 군 기지 폭발 사고 당시 지원을 제공한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해군 함선을 바타 항에 정박하고 현지 관리들에게 소방 훈련을 참관할 것을 제안하라고 지시했다.

WSJ는 이를 두고 “미국은 적도 기니에게 중국과의 광범위한 관계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위협을 느끼지 않는 수준에서 관계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미묘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백악관은 이같은 외교적 지원이 원하는 효과를 낼지 여부를 알지는 못하지만, 중국군의 주둔을 막기 위해선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적도 기니는 파이너 부보좌관의 방문 직후 백악관이 오비앙 대통령의 아들인 오비앙 망게 부통령을 “양국 관계 제1대담자”로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오비앙 망게 부통령은 그로부터 수일 뒤, 수도 말라보에 위치한 대사관을 찾아 미국 대사 직무 대행들과 파이너 부보좌관 방문 당시 언급됐던 사안들을 논의했다.

이는 양국 관계 개선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법무부는 앞서 오비앙 망게 부통령을 횡령 등의 혐의로 조사한 바 있기 때문이다. 말라보 주재 미 대사관은 2011년 ‘오명을 벗겨달라’는 오비앙 망게 부통령의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오비앙 망게 부통령은 이후 2014년 미국 정부에 말리부 별장과 페라리 한 대 등 자산을 반환했다.

오비앙 망게 부통령은 미 정부가 지난 가을 “반환된 자산 중 2660만달러(약 315억원)를 정부를 거치지 않고 코로나19 백신 및 기타 의료 지원의 형태로 적도 기니에 돌려보내겠다”고 발표했을 때에도 “미국 정부가 강요하지 않아도 반환 자산을 의료 목적에 사용할 생각이었다”며 트위터를 통해 항의했었다. 당시 적도 기니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의 발표가 “사실을 잘못 표현했다”고 규탄했다.

이밖에 미국 국무부도 오비앙 정권이 불법적인 처형과 고문, 학대 등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미 상원은 2004년 워싱턴 기반 릭스은행이 오비앙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의 부패를 외면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적도 기니의 테오도린 응게마 오비앙 망게 부통령. /AP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과 적도 기니의 밀착에 즉각 반응했다. 중국 정부는 적도 기니의 관련 발표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오비앙 대통령이 통화했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적도 기니는 항상 중국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여겨왔다”고 강조했다. 실제 중국은 적도 기니 경찰의 훈련과 무장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이 적도 기니와 가까워질 여지는 남아있다. 적도 기니는 근해 자원을 추출하는 데 미국 석유기업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도 기니는 이 자원을 통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자리잡았다.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 스티븐 타운센드 사령관은 앞서 지난 4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중국으로부터 가장 중대한 위협은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군사적으로 유용한 해군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라며 “군사적으로 유용하다는 것은 중국 군함이 이곳에서 군수품을 재무장하고 군함을 수리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 바 있다.

WSJ는 “아직까지 바타 항구에서 주요 공사의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적도 기니 정부와 중국 외교부 모두 보도에 대한 입장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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