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대 입찰보증금까지 등장.. 높아지는 정비사업 수주 문턱

최온정 기자 입력 2021. 12.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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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을 수주하려는 건설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입찰보증금의 규모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근에는 1000억원대의 입찰보증금을 전액 현금으로 납부할 것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입찰보증금이 중견·중소 건설사들의 진입장벽을 높인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 조합은 지난달 29일 마감한 시공사 입찰의 참여 조건으로 1000억원의 보증금을 현금으로 납부할 것을 내걸었다. 공사비 6224억원의 16.1%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촌동 한강맨션 전경. /고성민 기자

조합은 이 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받겠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입찰보증금을 현금으로 내도록 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합 관계자는 “사업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신뢰성이 높은 회사를 고르려다 보니 그런 조건을 넣게 됐다”면서 “조합원들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찰보증금은 낙찰자가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거두는 돈으로, 사업 지연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사들이 보증금을 납부하면, 조합은 시공사를 최종 선정한 후 탈락한 업체에 보증금을 다시 돌려준다. 시공사로 뽑힌 업체가 낸 보증금은 대여금 형식으로 조합의 사업비로 활용되며, 추후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면 조합은 금융권에서 대출을 일으켜 이 자금을 시공사에 갚는다.

과거 입찰보증금은 공사비의 5% 수준이었다. 지난 2016년 시공사를 선정한 인천 부평구 청천2구역 재개발 사업의 경우, 입찰보증금이 100억원으로 책정됐다. 사업 공사비 약 7500억원의 1.3% 수준이었다. 2019년 초 대우건설이 수주한 서울 성북구 장위6구역 정비사업도 총 공사비는 3200억원이었지만 입찰보증금은 150억원으로 공사비의 5%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10%에 거의 근접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0월 입찰을 진행한 한남3구역도 공사비 1조7000억원의 5.9% 수준인 1500억원을 입찰보증금으로 요구했다. 같은 달 갈현1구역도 입찰보증금을 공사비 9200억원의 10.8%인 1000억원으로 정해 입찰을 진행했다.

지방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사업완료 시 2600여 가구가 입주, 광주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히는 풍향구역 재개발사업 조합은 지난 8월 진행한 시공사 입찰에서 입찰보증금을 700억원으로 내걸었다. 공사비 약 9000억원의 7.7% 수준이다. 6월 입찰을 마감한 부산 금정구 재정비촉진5구역 재개발(공사비 1조2000억원)도 입찰보증금이 500억원이었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정비사업이 중간에 엎어지는 일이 잦아 입찰보증금이 많지 않았지만, 최근 정비사업 호황이 지속되면서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자 상황이 반전됐다”면서 “일부 조합의 경우 사전에 협의가 된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하기 위해 보증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입찰 문턱을 높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높아진 입찰보증금이 경쟁입찰을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건설사도 수백억원이라는 금액을 현금으로 조달하는 것은 부담이 되는 만큼, 입찰 참여를 주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강맨션 재건축 사업에 단독입찰한 GS건설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7512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의 13.3%에 달하는 금액을 입찰보증금으로 냈다.

B 건설사 관계자는 “입찰보증금 규모도 커졌지만, 최근 들어 이를 현금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면서 “재무구조가 튼튼한 회사도 1000억원이라는 돈은 사전에 준비해놓지 않으면 선뜻 마련하기 어려운 금액”이라고 언급했다.

국토교통부는 시공사 계약과 관련된 민원이 증가하자 지난해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개정하면서 일부 개선한 바 있다. 그러나 입찰 마감 전에 실시되는 현장설명회에서 보증금 일부를 요구하는 관행만 금지하고, 입찰보증금 규모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현 제도 하에서는 입찰보증금 규모는 조합에 일임하고 있다.

이태희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입찰보증금의 근본적인 취지는 시행사들의 찔러보기식 입찰을 막는 것인데 필요 이상으로 금액이 커졌다”면서 “법적인 문제가 생겨서 입찰에 배제될 경우 보증금이 몰수될 수도 있는 만큼, 자본이 적은 건설사들이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제약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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