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초보 아빠와 11세 딸, 7개월 '백두대간 동행'

글 서현우 기자 사진 김동석 토닥토닥 이사장 2021. 12. 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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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토닥토닥 김동석 이사장 "아이와 추억 만들고 싶어"..장애 앓는 아들 위해 마라톤 대회 운영도
설악산을 종주 중인 선우와 김동석 이사장.
딸의 작은 손을 잡고 백두대간을 종주한 아버지가 화제다.
김동석 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이 지난 9월 딸 선우(11)양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완료했다. 2021년 2월 11일 지리산 중산리에서 시작해 9월 11일 설악산 진부령에 도착했다. 총 36구간으로 나눠 산행했으며, 실제 걸은 거리는 GPS 측정 결과 약 853.6km였다고 한다.
“사실 저는 산악회 활동 한 번 해본 적 없는 등산초보예요. 그저 아이와 뭔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고자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등산이었죠. 선우가 세 살 생일 때 지리산 노고단을 함께 올랐는데 무척 좋아했었어요. 산에 올랐을 때 맞았던 바람이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100대 명산이나 지리산권을 조금씩 다녔고, 올해 뭔가 새로운 목표를 갖고 도전할 것을 찾다가 백두대간 종주로 연결된 거죠.”
원래 김 부녀가 백두대간 완주를 위해 잡은 기한은 반년. 2월에 시작해 더워지는 8월에 모든 것을 완수할 계획이었다. 전반부 구간은 순조롭게 마무리했지만, 8월에 남은 구간을 일시에 종주하고자 올라선 두타산에서 발바닥 부상을 당해 다소 지연되고 말았다. 김 이사장은 “등산에 대해 무지해서 애를 먹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종주 첫 시작부터 사고가 났었어요. 새벽에 구례구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가려는데 택시기사분이 ‘지리산 지금 못 가는데…’하고 말하더라고요. 말뜻을 이해 못 하고 그대로 가서 내렸는데 아뿔싸. 입산통제 중이더라고요. 눈도 40cm씩 쌓여 있고요. 입산통제란 개념을 잘 몰라서 생겼던 일이었죠.
사실 입산통제 안내판을 무시하고 슬쩍 들어가 볼까도 생각했는데 딸이 잡더라고요. 순간 머리를 짜내서 통제되지 않은 구간을 먼저 갔었죠.”
또 설악산에서는 조난당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너덜지대에서 길을 잃은 것. 김 이사장은 “사용하던 등산지도 어플이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며 “같은 자리를 10번 이상이나 계속 맴돌았다. 인근 산꾼이 도움 요청을 듣고 급히 달려와 우리를 구조했다”고 말했다.
설악산 공룡능선의 바람이 가장 좋다는 선우가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고 있다.
“그저 끝까지 걸어보고 싶었다”는 선우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가장 좋았던 코스에 대해 김 이사장은 금강산 신선봉을, 선우는 설악산 공룡능선을 꼽았다. 김 이사장은 “금강산이 남한에도 존재하는지 몰랐다”며 “여기 올라서 엄밀히 따지자면 백두산까지 간 것이 아니기에 이번 종주가 백두대간 완주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까지 오롯이 걸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우의 이유는 독특하다. 선우는 “설악산 공룡능선의 바람이 너무 좋았다”며 “마치 비눗방울처럼 몽글몽글 맺힌 바람이 내게로 다가와 톡 터지는 느낌이었다”고 묘사했다. 한편 선우가 적은 소감문에서 엿보이는 백두대간 종주 소감은 한마디로 ‘시원섭섭’이다.
‘초반부에는 힘들지만 그냥 자동화되어 이걸 그만두면 뭐가 무너질 것 같아서, 중반부에는 다하지 않으면 인정을 못 받으니까 억울해서, 후반부에는 그저 끝까지 걸어보고 싶어서 그렇게 그 여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 여정을 걸어갈 때는 너무나 멀고, 다가가기 힘들고, 빨리 오기만 하면 행복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는데, 막상 그날이 다가오니 왠지 공허한 기분이 들고 실망감도 섞여 버렸다. 너무 시시하게 끝나서, 또 주말마다 있는 백두대간 산행이 없어져 버렸다.
그래도 당분간은 다시 백두대간 종주는 안 할 거다. 한 최소 3년 정도?’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대간 종주 시작을 알리는 선우.
아들 건우 위해 마라톤 달려
김 이사장은 백두대간 종주와 별개로 또 하나 걷고 있는 길이 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추진이다. 현재 맡고 있는 ‘토닥토닥’ 역시 이를 위한 발족한 단체다.
“아들 건우가 두 살 때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됐어요. 치료비 걱정을 했는데 진짜 문제는 장애 아동의 재활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이었죠. 결국 온 가족이 병원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재활난민’이 됐었어요.”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13년, 병원에서 친해진 중증장애아 여섯 가족과 함께 모임을 만들게 됐다. 서로 재활 정보도 공유하고, 위로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 가족들은 2014년에 지역에서 열리는 한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것이 운명을 바꿨다.
“아픈 가족을 휠체어에 태우고 번갈아 밀고 당겨 마라톤을 완주해보자는 생각으로 참석했어요. 페이스북에 참석 사실을 알리자 현장에 시민 80명이 달려와서 가족들을 서포팅해 줬어요. 또 다른 대회에는 200명, 그 다음에는 무려 1,000명이나 와줬죠.”
사람들의 도움이 이어지자 김 이사장은 이듬해인 2015년에 1회 ‘기적의 마라톤’을 직접 열고 사단법인 토닥토닥을 창설했다. 첫 대회에 시민 2,000여 명이 참석했고, 대회 수익은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활동에 사용했다.
김 이사장의 노력으로 6년이 흐른 지금 전국 곳곳에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건립되고 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은 “아직 더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치료와 교육, 돌봄이 통합적으로 이뤄지는 장소가 돼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추진 중인 시스템을 보면 의무교육은 불확실하고, 돌봄은 대책이 없어요. 예산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도 많고요. 앞으로도 장애가족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대변인 역할을 더 열심히 해나갈 계획입니다.”
백두대간 완주를 기념해 만든 축전.

본 기사는 월간산 1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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