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연 하루 전 숨진 천재 작곡가, 그의 서른은 어땠을까? [왓칭]

손호영 기자 입력 2021. 12. 6. 09:01 수정 2021. 12. 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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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틱, 틱.. 붐!'
영화 '틱,틱…붐!'의 한 장면./넷플릭스

누가 그랬다. 나이 서른이 되니 잔치가 끝났다고. 요즘 서른은 옛날 서른하곤 다르다지만,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뀌는 건 어쩐지 두렵고, 너무 빠르고, 상징적이다. 서른에 닥치는 조급함과 묘한 기대감은 아마 그 시절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서른이 돼요. 폴 매카트니가 존 레넌과 마지막 곡을 만든 나이보다 많죠. 우리 부모님은 서른에 이미 자식이 둘이었고, 따박따박 돈 나오는 직업과 집도 있었는데. 8일 후면 내 청춘은 영원히 끝나요. 난 해놓은 게 뭐죠?”

극장에서 지난 12일 개봉하고 넷플릭스에 19일 공개된 영화 ‘틱 틱… 붐!’은 뉴욕에 사는, 서른 살 생일을 딱 8일 앞둔 한 청년의 이야기다. 조너선 라슨(Jonathan Larson). 브로드웨이에서 12년간 공연하고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뮤지컬, 우리나라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렌트’의 작곡가다. 뮤지컬 ‘렌트’를 안 본 사람도 대표곡 ‘Seasons of love’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8년 간 한 작품에 매진한 조너선 라슨(앤드루 가필드)./넷플릭스

불안한 서른을 견디고 20~30대를 창작의 열정으로 불태웠지만, 그는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하루 전 대동맥류 파열로 요절했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영화는 그의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담았다. 자전적 뮤지컬 ‘틱, 틱…붐!’이 원작이다. 영화에서 그는 아직 공연을 한 번도 못 올린 뮤지컬 작곡가다. ‘렌트’와 ‘틱,틱…붐!’을 쓰기 전, 8년간 매진했던 초기작 ‘슈퍼비아(superbia)’를 작업하던 1990년의 이야기다.

존은 허름한 아파트 5층에 룸메이트와 함께 산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배우 지망생이던 마이클은 꿈을 포기하고 고액 연봉을 주는 광고회사에 취업해 고층 아파트에 산다. 경쟁적인 생활에 지친 무용가 여자친구 수잔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나려 한다. 애인과 친구들은 하나 둘 현실과 타협해 떠나지만 존은 홀로 꿈을 붙들고 버틴다.

존과 그의 여자친구 무용가 수잔(오른쪽)./넷플릭스

오래도록 가난과 불안정한 삶을 견디게 한 건 한 워크숍에서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뮤지컬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에게 들었던 한 문장의 칭찬 덕분이었다. “탁월한 가사와 선율!”. 젊은 시절의 존은 자신이 가장 공들인 뮤지컬의 넘버 하나를 통째로 손드하임에게 바쳤다.

극 중반부에 나오는 넘버 ‘Sunday’다. 손드하임의 뮤지컬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의 넘버 ‘Sunday’를 오마주한 곡이다. 제목부터 멜로디, 가사까지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영화에서 감독은 이 장면에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인물들을 출연시켰다. 뮤지컬 렌트의 오리지널 배우들을 비롯해 버나뎃 피터스, 치타 리베라, 조엘 그레이 등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부분이 싫을 것이다. 뜬금없이 시작되는 군무, 널뛰는 감정선, 한두곡을 빼면 대부분 지루한 음악, 연극도 콘서트도 아닌 애매한 장르. 명작이라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도 영화관에서 졸았다는 사람이 많다.

이 영화는 그 공식을 깬다. 뮤지컬 작곡가이자 감독, 극본가, 배우인 린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가 연출을 맡았다.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둔 흥행 뮤지컬 ‘해밀턴’의 작사, 작곡을 맡았던 천재 극본가다. 이번 작품은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데, 끝까지 보면 대체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린마누엘은 이 영화로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었다.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연출이 한 곡도 버릴 것 없는 뮤지컬 넘버와 맞물려 최고의 시너지를 낸다. 90년대 초 조너선 라슨이 직접 공연한 아카이브 비디오(유튜브에 있다)처럼 보이도록 찍었다가, 1인극이나 3인극처럼 연출했다가, 여러 사람을 불러모아 전형적인 뮤지컬 형식을 만들기도 한다. 뮤지컬 영화이면서 어느 부분에선 다큐멘터리로도 보인다.

/넷플릭스

음악은 말할 것도 없다. 10여곡의 넘버 중 무엇 하나를 대표곡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시계 침이 째깍째깍 흐르는 피아노 사운드가 극 전체를 관통한다. 같은 음을 연달아 치다 불규칙적으로 벗어나는 반주가 매력적이다. 심장이 터질 거 같은 다급함,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으로 부풀어 터질 거 같은 서른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존 역을 맡은 배우 앤드류 가필드의 연기도 놀랍다. 영화만 봤을 땐 그정도인 줄 몰랐다. 유튜브에서 조너선의 생전 공연 영상들을 찾아보며 가필드가 주인공의 실제 모습을 얼마나 정교하게 표현했는지 알게 됐다. 언제라도 천재적 에너지가 폭발할 것 같은 들뜨고 흥분된 모습. 조너선 라슨 그 자체다.

/넷플릭스

11월 12일 극장에서 개봉했고 11월 19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로튼토마토 지수 평론가 평점은 88%, 관객 평점 95%로 매우 높은 편이다.

“최근 몇 년간 개봉한 뮤지컬 영화 중 단연 최고. 아직 상영하는 곳이 남아있다. 넷플릭스를 결제했더라도 극장에서 보면 후회 없을 영화”
손호영 기자

개요 미국 l 영화 l 2021 l 1시간 55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특징 손드하임을 향한 조너선 라슨의 헌사에 바치는 린마누엘의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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