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외롭다" 덜컥 입양하더니.."이제 반려견 버릴래요"

박형수 2021. 12.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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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보호소의 강아지. 연합뉴스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를 달래려 입양한 반려동물을 파양하는 사례가 최근 대폭 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등을 시행하자 많은 사람들이 고립감 해소를 위해 유행처럼 반려동물을 입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양육에 부담을 느껴 속속 포기 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물복지자선단체인 도그트러스트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개를 맡아달라”는 전화가 이전 대비 39% 증가했다. 이 단체 웹사이트의 ‘양육 포기’ 게시판 트래픽도 지난 2월 대비 100%, 지난해 2월보다는 180% 늘었다. 개 입양주선단체인 올독스매터의 설립자 아이라 모스는 “최근 몇주간 파양된 개들이 넘쳐나 사육장이 터질 지경”이라며 “대기자 명단까지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 동물복지단체인 영국의 동물의권리(RSPCA)는 “반려동물 파양 건수가 폭증하는 것은 이미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예견됐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체의 동물복지전문가인 샘 게인스 박사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재택근무와 원격수업 등이 도입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갑자기 길어지자 충동적으로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사례가 늘었다”면서 “양육에 따르는 헌신과 책임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외로움만을 생각해 반려동물을 데려온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사료제조업자 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올 3월까지 320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입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매릴랜드주의 한 동물가게에서 강아지를 손님에게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애덤 클로웨스 도그트러스트 운영책임자는 “팬데믹 기간은 사실 반려동물 입양에 부적절한 시기”라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강아지 카페 등에서 다른 개들과 어울리게 할 수도 없고 주인과 자주 산책을 가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심지어 수의사나 강아지훈련사를 찾아가 체계적인 관리와 컨설팅을 받기도 어려웠다. 클로웨스는 “팬데믹 기간에 입양된 동물들이 제대로 사회성을 기르지 못해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공격성을 보이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는 일이 많았고 주인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양을 선택하는 일도 많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팬데믹 기간 입양된 동물 가운데 상당수는 중성화수술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길거리에 유기될 경우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선단체 브롬스그로스센터의 동물복지 보조원인 캐롤라인 오람은 “최근 주인이 중성화수술을 시키지 않고 기르다 유기한 고양이들로 인해 이 일대에 새끼고양이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반려동물을 입양한 사람들이 신상에 변화를 겪어 어쩔 수 없이 파양하는 일도 적지 않다. 게인스 박사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면서 “반려동물을 더 키우고 싶어도 환경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클로웨스는 “현재 도그트러스트의 모든 사육장에 개가 가득 차 있다. 두려운 사실은 지금은 반려동물 파양이 막 시작된 시점이고, 아직 정점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RSPCA에 따르면 올해 반려동물 파양 수치가 지난해에 비해 약 20% 늘었다. 1분마다 양육을 포기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매일 70마리 이상의 파양 동물이 들어오고 있다.

주인이 재택근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반려묘. 연합뉴스


관계자들은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무작정 반려동물을 내다버리기보다는 자선단체나 전문가와 먼저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토트넘에서 일하는 수의사 보코스 영은 “어느 날 멋진 레인지로버 한대가 진료소 밖에 서더니 검은 고양이 다섯 마리가 들어 있는 상자 하나를 떨어뜨리고 사라졌다”면서 “이렇게 버리는 대신 고양이 보호소에 데려다 맡기면 도움과 조언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인스 박사는 “팬데믹 기간에 반려동물로 인해 정신적·정서적 위로를 받았던 사실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반려동물은 모두 고립됐던 시기에 잠시나마 교감을 나누고,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 산책할 이유가 돼 줬을 것”이라며 “여러 가지 이유, 특히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파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비난하지 않지만, 보호소를 찾는 등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는 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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