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황당한 종부세

김태훈 논설위원 2021. 12. 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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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고가(古家) 중엔 창문을 해가 들지 않는 뒤쪽으로 낸 집이 꽤 있다. 왕정 시기, 건물 정면의 창문 수에 따라 부과한 창문세(稅)를 피한 흔적이다. 황당 세정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창문세는 국민 삶에 큰 상처를 남겼다. 주민들은 어두컴컴한 집에 살아야 했고 나라는 나라대로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스페인이 왕정 시기 도입한 ‘알카발라’란 매출세도 실패한 세제였다. 상품이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동하는 모든 단계에 세금을 붙이는 바람에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세금 누적 현상이 빚어졌다. 국민 소비는 쪼그라드는데 세리와 국가만 배를 불렸다. 알카발라는 국민 경제를 황폐화하고 19세기 폐지됐다. 역사학자들은 나라를 말아먹은 세금이라고 지적한다.

▶많은 국민이 최근 받아 든 종부세 고지서를 보면서 황당해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 30년 가까이 살아온 한 회사원은 450만원이 적힌 종부세 고지서를 받았다. 40평대 아파트 한 채 가진 그는 재산세까지 합해 올해 1300여 만원을 보유세로 내야 한다. 두 달 치 봉급을 뜯긴 그는 “소득은 그대로인데 세금만 크게 오르니 어이없다”고 했다. 고액 양도세 때문에 다른 데로 이사 갈 수도 없다. 그는 “나라가 국민을 오도 가도 못 하게 가둬놓고는 돈을 갈취하는 꼴”이라고 했다.

▶공공 법인이며 사회단체들도 비명을 지른다. 사육신과 생육신 위패를 모신 강원도의 한 서원은 지난해 종부세 480만원에서 올해 8561만원으로 올랐다. 임대료를 5%만 올리라고 상한선까지 정하는 정부가 자기들이 받는 세금은 한 해 1800%나 올렸다. 대학이 소유한 교직원 사택과 기숙사, 종교 단체와 학교 등이 보유한 주택 등에도 법인 소유란 이유로 최고 세율인 6%를 적용했다. 집값이 아니라 사람 잡는 세금이다.

▶세금 부과할 때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정부가 당황했는지 공익법인에는 세율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국민이 비명을 지른 다음에야 허겁지겁 보완책을 내놓은 것이다. 처음부터 세밀하게 검토해서 부과하지 말았어야 할 세금이었음을 실토한 셈이다. 급조된 규제가 낳은 참사라는 어느 부동산 전문가의 말이 딱 맞는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로 정책의 졸속 도입을 꼽았다. 사전에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서 완성도 높은 정책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 정권은 정반대로 갔다. 집값이 오를 때마다 서른 번 가까이 세제 누더기질을 하며 국민을 실험실 쥐처럼 괴롭혔다. 다음 정권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실패 사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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