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최저임금 아래에 사는 사람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2021. 12. 6.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내년 최저임금이 한 시간에 9160원이다. 하루 8시간 일을 하면 일당으로 7만3280원을 받을 수 있고, 주 40시간씩 한 달 일하면 월급으로 191만4440원을 받게 된다. 그 돈이 다 통장에 찍히는 것이 아니다. 4대 보험과 소득세를 떼면 실제 받는 돈은 172만650원이다. 한 달에 일백칠십이만원.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계산을 해본다. 한 인터넷 구직사이트 설문조사를 보니 직장인 평균적 점심값이 식당 기준 8049원이었다. 사실 요즘 8000원에 식당에서 한 끼 먹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자. 우리는 사람은 하루에 세끼를 먹는다고 배웠으니 하루 기준 식대가 2만4000원, 한 달(30일)이면 약 72만원이다. 아침을 안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치킨이나 편의점 맥주는 사 먹을 테니 계산하면 얼추 비슷하다. 잔액이 백만원 남았다.

올해 서울부동산원에서 조사한 서울지역 연립주택 및 빌라의 평균 월세비용은 62만원이다. 은행대출을 영끌해서 집을 샀거나, 전세보증금을 마련했더라도 매달 내는 이자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집 없이 살 수는 없으니 월세를 내고 나면 잔액이 반토막이다. 차가 있다면 보험료와 기름값, 차가 없으면 교통비가 필요하다. 요즘엔 없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스마트폰의 통신비와 전기료, 가스비 등 피할 수 없는 최소한의 공과금을 내면 계절별로 입을 수 있는 옷 한 벌 사기 빠듯해진다. 이렇게 필수적인 의식주만 계산해도 최저임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무서운 사실은, 이 모든 계산이 1인 가구 기준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을 키우거나, 부양가족이 있다면 여기에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 이쯤 되면 장르가 호러다.

물론 자영업자들의 힘든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코로나19로 매출은 줄었는데, 임대료나 다른 비용들은 줄어들 여지가 없으니 매달 나가는 직원 월급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지금 최저임금으로 인간다운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30대 청년들의 월급은 대부분 최저임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아르바이트와 같은 임시직은 대부분 최저임금에 따라 움직인다. 취직하는 것도 바늘구멍이지만, 좁은 구멍을 뚫고 들어가도 안정적으로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변해간다. 올해 초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이 8억원이었다. 산술적으로 나눠보면 최저임금을 한 푼도 안 쓰고 40년을 모아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주식과 코인 같은 재테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사업주가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워한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정책을 개발해야지,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을 주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최저임금보다 덜 받으며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일자리는 결코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한다. 최저임금 아래에 사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지도자의 생각은 최소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