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에르도안의 ‘거꾸로 경제학’

최형석 경제부 차장 2021. 12.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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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터키 국민들의 삶은 요즘 고단하기 짝이 없다. 밀가루 가격은 지난달 말보다 2배 뛰었다. 이스탄불의 주택 월 임대료는 지난해 1500리라(약 13만원)에서 2500리라(약 22만원)로 67% 급등했다. 물가 상승률이 지난 8월부터 석 달 내리 20%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배가 넘는다. 38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한 80세 노인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터키 돈은 더 이상 값어치가 없다”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 있는 집권 정의개발당(AKP) 당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를 강요한 여파로 터키 리라화 가치가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이날 사상 처음으로 1달러당 12리라 선이 깨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최악의 경제난은 전적으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정책 헛발질 때문이다. 그는 치솟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선거 공약이었던 금리 인하 이행에 집착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책임자들을 경질하면서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 압력에 터키중앙은행(TCMB)은 지난 9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9%에서 15%까지 낮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기준금리가 인하되자 “기쁘다. 터키를 예속시키려는 국제 음모에 맞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리라화 폭락이었다. 올 들어 달러화 대비 가치가 85%나 하락했다. 지난달에만 약 34% 떨어졌다. 국가의 경제 수준을 반영하는 통화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지면 경제 위기가 닥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금리 인하에 반대하다가 해임된 세미 투멘 전 TCMB 부총재는 “성공 가능성 없는 비이성적인 실험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미국 경제 방송 CNBC는 “리라화 가치가 ‘몰상식한(insane)’ 수준에 있는 것은 터키의 몰상식한 통화 정책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국영 TV 방송에 등장해 “(금리 인하 추세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고 했다. 금리 인하나 돈 풀기를 옹호하는 발언이 최근 2주 새 5차례나 된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이상한 신조를 갖고 있다.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는 경제 상식과 정반대다.

그러면서 “신의 도움과 인민들의 지지로 우리는 경제 독립 전쟁을 승리로 끝낼 것이다. ‘글로벌 금융 서커스단’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1차 대전 후 터키를 점령한 외세에 맞서 터키 공화국의 기초를 세웠던 1923년과 현재가 다르지 않다며 독립운동가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터키의 경제난은 국가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 국민의 삶의 질을 얼마나 추락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소득 주도 성장, 최저임금 과속 인상, 탈(脫)원전, 세금 퍼주기 일자리 등도 경제 원리나 글로벌 경제 흐름과 맞지 않는 점이 적지 않았다. ‘에르도안급’ 대통령은 아니었다고 위안을 삼아야 하나? 터키 같은 경제 충격은 아직 없었다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대선이 93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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