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당정은 친재벌·부자감세 기조 벗어나야
[경향신문]
오는 9일 마무리되는 정기국회에서 상임위 여기저기마다 상정된 법안들이 속속 통과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공정경제와 민생을 외쳤던 여당이 제1야당과 친재벌·부자감세 기조의 법안들을 별 고민 없이 막 통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우려하는 시민사회와 소수 야당들이 막으려 해도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양당의 표결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상속세와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완화하는 법안이 11월30일 기재위를 통과했고, 득보다 실이 크며 재벌의 세습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복수의결권주식 도입 법안도 지난 2일 산자위 문턱을 넘었다.
상속세는 조세공평성, 부의 대물림, 불평등 문제와 연관되어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는 이미 공제한도가 최초 1억원에서 500억원까지 늘어났고, 대상 매출액 기준도 중견기업 3000억원까지 늘려줬음에도 4000억원까지 더 완화해주려 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제도에 손을 댄다면 대상기업을 늘릴 것이 아니라,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요건 등을 실효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 없이 대상 기업 확대를 택했고, 이 추세라면 재벌과 대기업까지 대상을 넓히는 법안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상속세 납부를 미술품 및 문화재로 할 수 있게 하는 물납제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세 납부 이슈 때문에 수면 위로 부상했었다. 물납제는 일부 도입하고 있는 국가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조세회피 및 국고손실 발생, 감정 문제, 구입 경로의 불투명성 등의 쟁점 때문에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상속세 연부연납 기간도 현행 5년에서 10년까지 연장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납부 대상이 전 국민의 2% 수준으로 예외 없이 부과해야 한다는 당정의 종부세 논리대로라면 2020년 기준 과세 인원이 피상속인 35만명 중 2.9%(1만명)밖에 되지 않고, 전 국민으로 하면 0.1%도 되지 않는 상속세도 마땅히 현행처럼 부과해야 함에도 완화하는 법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12억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은 물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와도 배치된다.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 법안은 회사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중요한 사안으로 제기되는 쟁점에 대해 숙의된 논의가 필요하다. 재벌에 악용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있다고 하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은 재벌법안 무력화의 역사를 봤을 때 향후 재벌 세습에 악용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벤처가 아닌 재벌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왜 적극 도입을 주장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친재벌 부자감세 기조에서 벗어나 재벌개혁,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를 외쳤던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이 법안들이 며칠 뒤 있을 본회의마저 통과한다면 시민들의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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