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뒷사람의 인상 때문에

황바울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2021. 12.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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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인상이 좋은 편이 아니다. 덩치도 크다 보니 폭력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가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한다. “폭력이 아니라 필력을 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라고 얘기하면, “혹시 펜이 칼보다 강해서 그러는 것인지요?”하는 이상한 질문이 돌아오기도 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진심으로 나는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아무튼 그런 인상 때문에 이리저리 오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인상이 타인 혹은 내게 주는 불편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집 근처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밤공기의 상쾌함을 홀로 만끽하고 있는데 내 10m쯤 앞으로 자그마한 여자 한 분이 합류했다. 그분은 몇 걸음을 걷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분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괜한 걱정을 끼쳐드렸다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또 괜히 오해를 샀다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다. 서운함이란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니까. 나는 그저 독서와 고양이와 산책을 좋아할 뿐이고, 산책하는 시간 빼고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 사람이다. 발걸음을 빨리해서 앞서갈까, 느리게 걸어서 멀어질까 고민하는데 그분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이 뒤를 돌아본 이유는 사실 담배 때문이었다. 담배 연기를 맡을 사람이 있나 살피다가 내가 보여서 인상을 쓴 것이다. 그럼에도 참지 못하고 담배를 문 것이고. 내뿜은 연기는 내 얼굴로 달려들었다. 나를 흡연자라고 생각한 걸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무차별적인 무례 속에서도 깨달음은 있었다. 나 역시도 그분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구나. 그분이 나처럼 우락부락했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다시 고민했다. 발걸음을 빨리해서 앞서갈까, 느리게 걸어서 멀어질까. 이번에는 그분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고민이었다.

황바울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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