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칼럼]김종인을 위한 변명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2021. 12.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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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칼럼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가용 비행기를 전세 내어 미국을 방문했다. 취업금지 중인데? 이 돈 자기가 냈을까?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함영주 하나지주 부회장이 이탈리아 헬스케어 사건 제재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남의 집을 턴 도둑을 한 번 처벌했다면 다른 집을 또 턴 것은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함 부회장을 금강불괴로 만들어준 정 원장.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국회 산자위는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류호정·조정훈 의원 반대, 이주환 의원 기권. 그 외 전원 찬성. 이 법안은 벤처에 실익이 없고, 승계에 목마른 재벌이 바라는 것이다. 쿠팡 사례를 들먹이지만 쿠팡은 미국 회사라서 미국에 상장한 것이다. 마켓컬리는 국내 상장을 앞두고 오히려 경영권 불안정이 상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개정안이 있었다면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다. 상장하면 복수의결권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재벌은 상장 후에도 복수의결권을 존속시키라고 할 것이고, 그 후 규제 역차별 운운하며 재벌에도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라고 할 것이다.

이재명과 윤석열은 본회의 의결 전에 상법 왜곡과 재벌 승계 측면에서 이 법안에 대한 의견을 밝혀야 한다. 이재명은 어쩌면 이미 의사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돈 많은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지난 칼럼 이후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경향신문은 정기 필진 교체 차원에서 이번 칼럼이 마지막이라고 통보해 왔다. 돌아보니 오래 쓰기도 했다.

김종인에게 경제 민주화는
이루지 못한 미완의 꿈이다
윤석열, 좋은 대통령 되고 싶다면
마지막 날까지 김종인 중용해야
복지 정책 적임자는 바로 그다

고심 끝에 선택한 마지막 칼럼의 주제는 ‘김종인’이다. 몇 가지 미리 밝혀둔다. 김종인은 정치인이지만 내게는 선생님 같은 존재라서 ‘김박사’로 호칭한다. 또한 나는 1990년대 중반 대한발전전략연구원의 재정 지원으로 <화폐와 신용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낸 적 있다. 그러나 현재 어떤 이해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김박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마키아벨리스트다. 국가가 처한 시대적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합리적 해법을 프린스, 즉 군주에게 강하게 들이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종종 이 압박이 너무 강해서 군주들이 질리기는 하지만.

사회의 안정과 국가의 번영, 이것이 김박사가 마키아벨리스트로서 추구하는 목표다. 요즘은 김박사를 ‘킹메이커’라고 하지만, 김박사의 절정기는 군부 독재 시절이었다. 국가 번영이라는 박정희의 철학이 남아 있던 시기였기에 김박사의 활약은 사회 안정 쪽에서 두드러졌다. 의료보험 도입, 소련 수교,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그리고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 삽입 등. 이런 사회질서 설계의 이면에는 서독의 경제적 부흥을 이끈 에르하르트의 사고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반재벌 정책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모 교수가 재벌 돈 먹고 헛소리하더라”는 한탄과 혹시 청부 폭행을 당할까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기분이 조금 찝찝했다는 후일담은 그런 어려움을 상징한다. 이때 이후로 김박사는 재벌의 ‘공적 1호’로서 극심한 견제의 대상이 되었다. 김박사는 ‘경제 민주화’를 내걸고 수차례 선거 승리를 이끌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즉시 팽 당했다. 기득권 세력에 김박사는 너무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는 그에게 이루지 못한 ‘미완의 꿈’이다.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윤석열 때문이다. 이런 전사(前史)를 알지 못하면 왜 김박사가 ‘몽니 부리는 꼰대’ 소리를 들으며 권한과 자리를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를 경제수석으로 발탁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후 평가가 왜 12·12와 5·18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에 그칠 수 있는지, 반대로 그를 저버린 김영삼, 박근혜 대통령이 왜 IMF 외환위기와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초라하게 퇴장했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김박사를 받는다는 것은 경제 민주화를 받는 것이다. 윤석열이 야경국가 통치의 적임자일 수는 있지만, 복지국가 정책의 적임자는 김박사다. 청년과 약자를 위한 정책은 사람 몇명 영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프리드만의 경제학 스승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강조했던 앨프리드 마셜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맘대로 하라. 좋은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권좌의 마지막 날까지 김박사를 중용하라. 자 그럼 뿅.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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