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국법과 정치만이 알지 못하는 것
[경향신문]
지난달 25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주최로 평등법(차별금지법)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평등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토론회의 취지가 무색하게 반대측 토론자들은 여러 차례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를 정당화해온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토론회에서는 이미 예상됐던, 한편으로 익숙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를 조장해 에이즈(AIDS)가 전파된다는 말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이 치과의사라는 의학적 소양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에 더욱 한숨이 나왔다. AIDS 환자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981년이다. 그 후 40년이 지나는 동안 이와 관련한 의학적 연구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1986년 AIDS의 원인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발견되었고, 1995년부터는 표준치료로 확립된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의 개발과 보급으로 인해 HIV/AIDS로 인한 사망률은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HIV는 하루에 1알의 약만 먹으면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된 지 오래이며, 최근의 연구는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이 비감염인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전 세계 100여개의 국가들이 참여하는 U=U 캠페인은 HIV/AIDS에 대해 또 다른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검출되지 않으면(Undetectable) = 감염되지 않는다(Untransmittable)는, 즉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을 받아 HIV가 억제되어 혈액 내에 미검출 상태가 된 경우 타인에게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치료가 곧 예방이라는 것이다. 이에 유엔에이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등에서도 공식적으로 U=U를 이야기하고 있다.
HIV는 약한 바이러스로서 인체 밖을 나가면 바로 사멸한다. 그렇기에 HIV는 일상생활에서 전염되지 않는다. 그밖에 HIV/AIDS와 관련한 이러한 지식들은 질병청 홈페이지를 비롯해 여러 공식적인 자료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지식들은 40년의 시간 동안 HIV를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한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와 나아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온 HIV 감염인들이 만들어낸 성과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역사적 흐름을 망각한 채 아직도 HIV/AIDS에 대한 무지로 일관하는 곳이 있다. 고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이 아니다. 이러한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정치권,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법이 바로 그러하다. 특히 이 모든 무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이다. 해당 조항은 HIV 감염인이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을 한다. 전파매개라는 용어가 갖는 모호함도 문제지만, 이 조항은 근본적으로 HIV 감염인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처벌이라는 공포를 통해 오히려 치료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려운 법조항이다. HIV 감염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치료를 독려할 때 예방도 된다는, 지난 40년간 쌓아오고 확립된 이 원칙을 낡은 인식을 지닌 정치와 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낡은 인식은 비단 HIV에 관해서만이 아닐 것이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버젓이 국회 토론회에서 나오고 시민들 절대 다수가 동의하는 차별금지법을 합의를 운운하며 미루는, 정치의 이러한 모든 민낯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는 결국 평등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며 무너져 내릴 허물들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HIV 감염인 인권 보장의 날 전후로 울려 펴진 구호를 다시 한번 외쳐본다.
“혐오를 넘어, 질병을 넘어, 사람을 보라.” “전파매개행위금지죄 폐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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