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마추어' 공수처의 역주행

입력 2021. 12. 6. 00:09 수정 2021. 12. 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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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ㆍ구속 영장 세번 연속 기각 당해


정치적 중립ㆍ인권 수사 약속 물거품


지난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해 있다. 출범 당시 김 처장은 “여당 편도 아니고 야당 편도 아닌 오로지 국민 편만 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수사”를 다짐했었다. 장진영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지난 3일 또 기각됐다. 앞서 두 번의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에 이어 세 번째다. 서울중앙지법 서보민 영장전담부장판사는 “피의자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반면 구속 사유와 필요성, 정당성에 대한 소명이 충분치 않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연거푸 기각당한 영장을 한 달 뒤 다시 청구했는데도 수사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의미다.

야당 대선후보와 관련된 사안의 중대성이나 국민의 높은 관심을 고려하면 이런 부실 수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 사건의 주임검사인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영장전담판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법원을 압박하거나 요행을 노려 영장을 계속 청구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욱 황당한 일은 영장을 기각당하자마자 이번엔 ‘판사 사찰 의혹’ 수사를 이유로 손 검사에게 재차 소환 통보를 한 사실이다. 수사력 밑천이 드러나 ‘공수(空手)처’라는 비아냥을 듣더니 ‘오기(傲氣) 수사처’를 자임하는 모양새다.

최근 공수처의 행보는 인권 수사와 정치적 중립성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법원은 공수처가 실시한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 압수수색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보기 드문 망신이다. 공수처 인력 상당수는 지금 야당 관련 수사에 매달려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10월 신임 검사 임명식에서 “우리가 하는 수사는 일반적인 고소ㆍ고발 사건의 수사가 아니라 과거 검찰 특수부에서 담당하던 사건들”이라며 수사 역량을 강조하고 “특히 인신구속에 있어서는 그 기준을 점점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여 차장 역시 지난 2월 취임 당시 ‘정치적 중립성’과 ‘인권친화적 수사’를 언급하면서 “모든 일은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 공수처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역주행을 강행할 셈인가.

여 차장은 지난 2일 손 검사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능력 부족을 자인한 셈인데, 그럴수록 겸손한 자세로 수사에 임해야 마땅하다. 아마추어니 멋대로 칼춤을 추는 걸 이해해 달라고 호소해 봐야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출범 초기부터 이성윤 서울고검장에게 김 처장 관용차를 제공해 ‘황제 조사’ 논란을 일으키더니, 최근엔 이 고검장의 공소장 유출을 이유로 수원지검을 압수수색해 비난을 자초했다. ”과거 검찰이 국민의 불신을 받아 조직이 축소됐는데 공수처는 왜 그런 반성을 못 하는지 모르겠다“(김경수 전 대구고검장)는 비판이 나온다.

1년이 안 돼 폐지론이 나오는 사태를 공수처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검찰보다 어설프면서 더 편향적인 수사기관은 우리나라에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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