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되는 전세시장..가격표 3개가 돌아다닌다
정부가 임차인 보호를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한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이 본격화하고 있다. 보증금 증액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전체 중 약 4분의 1에 불과한 데다, 계약의 형태에 따라 세 가지 가격이 공존하는 ‘삼중가격’도 나타난다. 전세를 월세 낀 반전세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었다.
5일 중앙일보가 지난 6~11월(계약일자 기준) 6개월간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올라온 서울 아파트 임대차(전·월세) 거래를 조사한 결과, 전체 신고 계약(5만1187건)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은 전체의 약 4분의 1인 1만2953건(25.3%)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 상한제를 골자로 한 임대차 2법을 도입한 데 이어 올해 6월 전·월세 신고제를 시행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전·월세 신고제로 수집한 거래정보 중 계약기간(월 단위), 갱신·신규 계약 구분, 갱신요구권 사용 여부, 종전 임대료 등을 공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보증금 증액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갱신청구권을 도입하면서 임차인의 임대료 부담이 크게 줄어들 거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박모(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씨는 “지난 8월 집주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재계약하지 않고 본인이 입주하겠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보증금을 30% 올려 재계약했다”며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같은 단지, 같은 면적과 (보증금이) 거의 1억원 차이 난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씨 사례와 같이 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은 갱신 계약(전세→전세)의 경우 보증금이 평균 18.8% 증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성북구가 보증금 증액률 25.3%로 가장 높았고, 용산구(23.5%), 강동구· 종로구(23.3%) 등 순이었다.
신규 계약인지 갱신 계약인지, 또 갱신청구권 행사 여부 등에 따라 전세 보증금 차이가 벌어지는 ‘삼중가격’ 현상도 심화했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의 2년 전 전세 보증금 시세는 6억원 후반~9억원 정도였다. 이번에 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재계약은 2년 전 시세 5% 이내로 보증금을 올려 7억~9억원 사이 가격대다. 하지만 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계약한 경우는 9억~11억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신규 계약은 이보다 더 비싼 보증금 11억~13억원에 거래됐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전용 84㎡ 전세 계약은 조사 기간 31건이었는데, 보증금은 5억1450만~11억5000만원으로 최저·최고가의 차이가 6억원 이상 벌어졌다.
기존 임대차 계약이 전세에서 월세로 변경된 사례도 이 기간 656건으로 나타났다. 보증금이 같거나 증액되고, 월세가 더해진 계약은 554건이었다. 기존 월세 계약에서 월세가 증액된 경우는 2544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보증금과 월세가 모두 증액된 사례도 460건이었다.
신규 전·월세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늘고 있다. 5678가구 규모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의 경우 지난 6월부터 전·월세 신규 계약이 119건이었다. 이 가운데 월세가 조금이라도 낀 반전세가 전체의 68.9%인 82건으로 나타났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도 월세 낀 계약이 전체의 64.1%(25건/39건)를 차지했다.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임대료를 최대한 높여서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임차인 계약이 끝나는 내년 8월부터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내년 상반기 중에 갱신청구권을 한 차례 사용한 전세 이주 수요가 몰리면 집주인들은 4년 치 인상분을 받으려 해 시장을 더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산업연구원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전국 주택 전셋값은 6.5% 오를 전망”이라고 밝혔다. 올해 예상 상승률(4.6%)을 뛰어넘는 것이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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