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공급이야

한겨레 2021. 12. 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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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1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최한수ㅣ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참패한 지난 4월 나는 ‘30대의 패닉바잉과 응징투표’라는 칼럼을 썼다. 비록 암울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희망이 있었다. 패인을 알고 나면 부동산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그러나 민주당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 8개월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결과는? 현재의 많은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밀리고 있다. 더 심각한 사실은 전통적 지지기반이자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며 지지를 보내던 수도권과 30대의 유권자들에게 과거와 달리 민주당이 버림받고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지역과 연령별 성향을 고려하면 이들의 지지 없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상대방 후보의 하자가 아무리 중해도 그것이 승리를 견인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는 비비케이(BBK)로 도배되면서 최저 투표율로 끝난 2007년 선거의 교훈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대중에게 각인된 이 후보의 부동산 정책은 3가지이다. 보유세를 대폭 올리고(국토보유세), 공공 임대주택을 늘리고(기본주택), 그리고 ‘블록체인 기반의 개발 이익의 환수’가 전부이다. 이 후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이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래서 5년 안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냐”는 의문을 품는 서울과 경기의 30대, 아니 내 집 마련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진보 진영은 주택공급을 죄악시한다’라는 편견의 재확인일 것이다.

가격 하락을 시사하는 일부 보도와 달리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지난 2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거래는 절벽이지만 가격상승은 여전하며, 30대 패닉바잉은 지속적이다. 다주택자 매물은 증여를 통해 소화되고 있으며, 전세 매물은 줄고 전세가는 상승하고 있다.

함의는 명확하다. 정부의 ‘3080+ 대책’이 시장의 기대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더 안 좋은 징후도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치솟음에 따라 매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경기도로 옮겨지면서 경기도 아파트의 매매가와 전세가가 지난 2년 동안의 서울의 움직임을 재연하고 있다. 그 결과 그나마 선방했던 이 후보의 경기도 지지율 역시 서울의 낮은 후보 지지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나의 어림 계산에 따르면 총선 이후 서울 아파트의 30대 매매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1.9% 늘었다. 또한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이 1% 오를 때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0.6%포인트만큼 줄었고, 30대의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0.7%포인트 증가했다.

공급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것도 분명하고 빠르게. 어제는 ‘부동산 불로소득의 청산’을 얘기하다가 오늘은 ‘시장의 예상을 넘는 대규모 공급 정책’을 언급하는 갈팡질팡의 태도로는 안 된다.

2008년 9월19일,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그린벨트에 정부 주도로 150만호의 주택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서울 시내 아파트가 150만채임을 고려하면 ‘담대한 계획’이었다. “국민 모두가 집을 소유하는 그날까지 공급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무주택 서민들은 환호했다…. 강남에 아파트가 공급되자 사람들은 집 사는 것을 미루었다.”(마강래,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 중) 시장의 예상을 넘는 공급이란 이처럼 사람들이 집을 사는 것을 미룰 정도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물량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상징이 필요하다. 그리고 강남의 그린벨트나 용산공원의 개발처럼 ‘진보 진영의 금기’에 도전하는 정책일수록 그 상징 효과는 클 것이다. 이 전략이 먹힌다면 적어도 30대의 패닉바잉은 잠재워질 것이고 집값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최근 이 후보는 부동산 정책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다행이다. 이재명 후보의 트레이드마크는 기본소득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유토피아적 몽상에 불과하던 기본소득이 주요한 대선 정책으로까지 올라온 것의 팔할은 그의 결단력과 추진력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이재명 후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지금은 그 결단력과 추진력을 기본소득이 아닌 주택공급에서 보여줄 때이다. 이것이 사실상 이 후보에게 남은 대선에서의 ‘마지막 주머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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