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 그 뒤'로 빛나는 삶 [이 책]

엄민용 기자 2021. 12. 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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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그날 / 바위에서 죽었다 / 이 죽음의 일기는 내 삶에 던진 내 죽음의 농담 / 그러니까 / 내가 아직 죽어 있다는 / 죽음의 거짓말.”

지난여름 박인식 시인이 내놓은 시집 ‘내 죽음, 그 뒤’가 화제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인 ‘내 죽음, 그 뒤’에는 바위절벽에서 ‘죽음 판정’을 받은 이후 시한부 죽음을 체험하며 건져낸 죽음과 삶에 대한 사유가 72편의 시에 촘촘히 담겼다.

앞선 시집들에서 소설가이자 시인·산악인·미술평론가로 살아온 자신의 다양한 ‘삶’을 시어로 풀어놓았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내 죽음, 그 뒤’라는 하나의 주제로 죽음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던진다. 바위절벽에서 추락사의 위기를 겪으며 죽음을 미리 경험하고 죽음에 사로잡힌 시인은 시간과 공간, 시와 소설, 모든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써 내려간다.

“시인은 죽음에 영영 머무르지 않는다. 천천히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어머니의 곁에서 삶과 죽음을 통합해 내고, 결국 삶을 노래한다”는 그의 시에 대해 이경호 문학평론가는 “‘거기’와 ‘여기’(‘읽어두기, 그날 거기 그리고 여기’)로 분리됐던 시공간과 ‘지하철’과 ‘지상철’(‘지하철 환승은 어렵다’)로 분리됐던 죽음의 자리와 삶의 자리를 이어놓는 기적을 연출해 내고야 마는 것이다”라고 해설했다.

자신이 죽었던 자리에서 앳된 새 생명을 만난 시인은 “영혼의 울음”을 나누고 “돌고 도는 삶과 죽음의 비밀을 / 이해하지 못한 것은 // 아무것도 없었노라”(‘백일’)고 노래한 그날 이후, 어느 가을바람 부는 때에 “여름 한철 시한부 죽음도 마감”하기로 한다. “살기 위해 페루로 가서 죽어야겠다”(‘바람 바람’)며 스스로 죽음에서 걸어 나온 시인은 이제 미처 다 쓰지 못한 삶의 시를 쓰며 살아갈 듯하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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