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죽음 좇다 심연 속에 심장박동 남기고 떠났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4.4'
회고전 준비하다 작가 사망해
세계 최초 유고전 한국서 열려
내년 3월 27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
규칙적으로 울리는 심장박동 소리에 이끌려 전시장에 입장하니 어두컴컴한 벽 양쪽에 불규칙한 형태의 검은 아크릴 판들이 가득했다. 천장 가운데 달린 전구 하나의 빛이 내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니 내가 마치 그 공간 속 일부가 된 것만 같다. 고인이 된 작가가 남긴 '생명의 소리'인 심장박동이 주는 역설적 상황 속에서 내 존재를 새삼 되돌아본다. 한국 단색화 열풍을 선도하는 작가 이우환도 일본 데시마에서 이 작가의 '심장소리' 프로젝트를 접하고 깊은 울림을 받았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의 3번째 전시로 기획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전이 미술계에서 화제다.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으로 준비되던 전시가 첫번째 유고전이 됐기 때문이다. 올해 10월 15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볼탕스키가 작품 선정과 공간구성, 전시 디자인까지 완성한 상태로 지난 7월 14일 타계했다. 전시 기획에 관여했던 이우환이 볼탕스키와 대담하기 위해 출국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우환은 예정대로 출국해 장례식에 참석한 후 프랑스에 체류중이다. 프랑스에서 온 그의 스튜디오 설치팀은 작가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참아가며 전시를 준비했다.
전세계적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상에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게 된 현 상황에 대해 작가는 "죽음은 현재"라고 말해 왔다. 유대인 의사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들의 증언을 통해 간접 경험한 대량 학살이나 집단적 죽음을 초기에 다루다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등으로 확장해 평생 탐구해 왔다.
전시장 초입에는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1986년작 'Monument(기념비)' 연작이 나온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어린이 사진으로 종종 오해되지만, 이 작품은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 안의 어린이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았단다. 수집된 사진을 재촬영해 가공한 인물들이 작은 백열등과 주석 액자틀에 담겨 새로운 의미를 내뿜는다.
또 다른 유명작 '그림자 연극'은 인간이나 해골 형상을 허접한 종이로 인형극처럼 만들고 빛을 비춰 그림자를 만들고 바람으로 움직임을 주는 방식으로 재연됐다. 무서운 환영을 만들어내는 형상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나 인간 삶의 실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가장 초기작인 1969년 아방가르드 단편영화 '기침하는 남자' 영상 속 좁은 방안에서 탈을 쓰고 기침하며 각혈하는 인물 모습이 지금 봐도 충격적이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Coat(코트)'라는 작품도 푸른색 전구로 옷 모양을 둘러싸는 '부재'를 상징한다. 지푸라기 2톤(t)위에 번쩍이는 응급담요를 덮고 천장에 달린 전구 하나가 진자 운동처럼 움직이는 작품 'Mer Doree(황금 바다)'은 유대인 학살후 금니가 쌓인 모습같기도 하다.
마지막 별관에서 보는 2021년 작품 '설국'은 하얀 천들이 겹겹이 뒤엉켜 산처럼 쌓여 있고 핏줄이나 혈관처럼 길게 늘어뜨려진 천장의 하얀 LED 조명이 코로나 시대 병상의 침대 시트를 연상시킨다. 2015년작 '황혼'에서는 어두운 방 바닥에 전시 기간을 상징하는 165개의 전구가 깔려 있고 매일 하나씩 꺼지게 설정돼 마지막날 암전된다. 지나가는 시간과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작가가 환기시킨다.
기혜경 관장은 "작가의 갑작스런 타계로 여러 전시가 취소됐지만 이번 회고전은 어렵게 성사됐다"며 "작가가 평생 이야기해온, 현재화된 죽음의 의미와 기억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 3월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일부러 관람객들의 자유로운 감상 혹은 명상을 열어두기 위해 전시장 안에 작품명을 달지 않았다. 전시소개 책자를 들고 찬찬히 작가의 궤적을 따라가보면 된다.
[부산 =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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