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보다 성덕임에 더 주목하게 되는 이유

이준목 입력 2021. 12. 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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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이준목 기자]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아래 옷소매)이 세손 이산(이준호)과 궁녀 성덕임(이세영)의 깊어지는 로맨스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4일 방송된 <옷소매>는 덕임이 영조(이덕화)로부터 하사 받은 영빈의 유품을 훔쳤다는 오해를 받아 위기에 몰린 순간과, 이산이 덕임과의 오래된 인연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이산은 덕임이 자신의 마음을 거절했다고 오해하고 분노한다. 덕임의 목을 잡은 이산은 "너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다. 오직 내 명에 의해서만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 잊지마라"라며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덕임은 여태 보지 못한 이산의 모습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산의 호위무사 강태호(오대환)는 이산을 찾다가 홍덕로(강훈)가 어의와 밀담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다. 강태호는 어의를 포섭하지 말라는 이산의 명을 어기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홍덕로는 이를 무시하고 이산 앞에 어의를 데려와 영조가 매병(치매)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산과 덕임의 오래된 인연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 MBC
 
제조상궁 조씨(박지영)는 성덕임을 불러서 이산의 후궁이 되라고 요구한다. 조씨는 "세손이 사도세자처럼 되지 않을지 알아야 한다. 내가 통솔하는 700명의 궁녀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 궁녀들을 위해 네가 나서주어야 한다. 저하의 후궁이 돼 나의 눈과 귀가 되어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성덕임은 이를 거절하며 "계책은 필요치 않다, 세손 저하를 믿으시면 된다. 저는 저하를 믿는다, 성군이 되실 거고, 절대 돌아가신 사도세자 저하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음을 드러낸다.

조씨는 성덕임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하여 감찰상궁을 시켜 궁녀들의 방을 뒤지게 한다. 성덕임의 방에서는 죽은 영빈이 쓴 책 여범(女範)이 발견된다. 성덕임은 의도치 않게 영빈의 책을 훔쳤다는 오해를 받고, '왕실 재물을 훔치는 자는 참수형이 처한다'는 규정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

성덕임은 정순왕후 중전 김씨(장희진 분)에게 문초를 당했다. 성덕임은 어린 '생각시' 시절 영조를 만나 직접 영빈의 책을 하사 받았다고 고백한다. 중전과 이산 모두 영조가 그토록 아끼던 영빈의 유품을 일개 생각시에게 내렸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이산은 죄를 인정하고 가벼운 유배형을 내리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하지만, 덕임은 물러서지않고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정당하게 하사받은 것이기에 그 책은 제 것이다. 주상 전하가 저의 증인이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중전과 이산, 성덕임은 결국 영조를 찾아간다. 하지만 치매를 앓고있던 영조는 덕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영조는 덕임에게 단근형(발꿈치의 힘줄을 끊는 형벌)을 내리고 출궁시키라고 명한다. 놀란 이산은 영조 앞에 무릎을 꿇고 "단근형을 받고 쫓겨나면 저 궁녀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전하께서는 제게 백성 하나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군주될 자격이 없다고 하셨다"던 이야기를 거론하며 "잠시만 더 저 아이에게 군주의 시간을 내어달라"고 간청한다.

영조는 이산의 간청을 받아들여 덕임에게 과거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보라고 명한다. 덕임은 "전하께는 분명 고통스러운 기억이 될 수 있다"고 미리 사죄하며 과거 영빈의 빈소에서 만난 영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조가 어린 시절의 덕임을 향하여 화평 옹주를 닮았다고 말했던 일화, 젊은 시절 고왔던 영빈을 떠올리며 "옷소매 끝동이 몹시 붉고, 과인은 그걸 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 얼음이 차다한들 내 마음보다 찰까. 내 정녕 그녀를 잃었구나"라고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던 일화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영조는 덕임에게 영빈의 책을 하사했던 것. 덕임의 이야기에 과거를 떠올린 영조는 눈물을 훔쳤다.

영조는 돌연 화를 내며 "맹랑하다. 제 목숨 하나 건지겠다고 감히 과인을 울리다니"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풀린 영조는 "내가 왜 네게 영빈의 책을 주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영조는 "네가 글씨를 잘 쓰는 궁녀가 되고 싶다며 그래서 영빈의 책을 준 거다, 영빈이 참 글씨를 잘 썼거든, 그래도 책을 준 보람이 있네"라고 칭찬했다. 영조는 덕임의 이야기에  이미 모든 기억을 떠올렸고 덕임은 목숨을 건졌다.

구사일생한 덕임은 "궁녀로 살기 쉽지않다"고 혼잣말을 하며 한숨을 내쉰다. 뒤따라온 이산은 덕임에게 영빈의 책을 돌려준다. 이산 역시 덕임의 이야기를 듣고 영빈의 빈소에서 만났던 여자 꼬마아이가 바로 덕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덕임의 용기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 MBC
 
한편 영조는 늦은 시간에 강태호, 홍덕로 등 이산의 측근들을 은밀하게 궁으로 불러 비밀스러운 지시를 내린다. 바로 세손에게 왕위를 이어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누가 세손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줄지 고민했는데 여기있는 그대들이 전부다. 앞으로 닥쳐올 어렵고 힘든 일을 포기하지말고 해내라"고 당부한다.  

제조상궁 조씨는 사조직인 '광한궁'을 이끌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왕을 택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조씨는 궁녀들을 광한궁에 가입하도록 강요하는가하면, 사도세자의 보모 상궁인 박상궁을 감금하고 고문하는 등 냉혹한 모습을 드러낸다.

영조는 세손 이산에게 대리청정을 지시하지만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홍정여(조희봉)는 "세손은 누가 노론이고 소론인지, 이조와 병조판서에 누가 좋은지 알 필요가 없으며, 조정의 일은 더욱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동덕회에 참석한 이산은 "국본(세손)을 모함하는 이들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리라"고 측근들에게 지시하며 "장차 나의 조선에서 살든지, 아니면 죽든지"라고 정면대결을 선언한다.

화완옹주(서효림)은 이산의 생모 혜빈 홍씨를 찾아가 대리청정을 거부하라고 협박한다. 홍씨는 "세손이 왕위에 오르면 어미에게 궁호와 존칭을 미리 정해놓고 내려준다고 하더라. 훗날 나는 혜경궁이라 불릴 것이다"라면서 "그런데 옹주는 어떻게 불릴 것 같나. 옹주가 아니라 한낱 서인으로 몰락할 것이다. 죽은 남편의 성을 따라 정씨의 처라고 불릴 것"이라며 조롱한다. 옹주는 분노에 몸을 떨면서도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이산은 후원에서 만난 성덕임과 재회한다. 이산은 덕임에게 영빈이 세상을 떠나던 날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던 이야기를 언급한다. 덕임은 "그날 제 또래 배동아이 하나를 만났다. 함께 영빈의 빈소에 갔고, 그 아이가 영빈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고 회상한다.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느냐는 이산의 질문에 덕임은 잠시 생각하다가 "산이였다"고 떠올린다. 이산은 덕임을 와락 껴안으며 "너였구나"라고 감격하고, 덕임 역시 "저하셨군요"라고 답하며 놀라워했다. 드디어 서로의 인연과 진심을 확인한 두 사람의 애틋한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을 알리며 기대감을 높였다.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재해석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 MBC
 
<옷소매>는 실존인물인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 이산과 의빈 성씨의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강미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를 표방했다.

영-정조 시대는 워낙 극적인 이야기와 인물상이 넘쳐나다보니 대중문화에서 여러 장르에 걸쳐 활용된 소재다. 영조-사도세자-정조까지 3대에 걸쳐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애증의 궁중사 속에 세대간의 갈등, 왕권과 신권의 대립, 비극적인 로맨스, 여인들의 한에 이르기까지 펼쳐낼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죄인의 자식이라는 태생적 약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성군으로 거듭나는 정조의 인생 여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옷소매>가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사극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조연에 머물렀던 '궁녀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데 있다. 덕임의 모델인 의빈 성씨도 실제 궁녀 출신이지만, 극중 덕임은 신분 계급적 질서를 뛰어넘어 자신의 꿈과 사랑에 당당하고 주체적인 현대여성에 가까운 캐릭터로 재해석됐다. 덕임은 주인인 이산의 일방적인 선택과 보호를 받는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능동적인 캐릭터다.

덕임은 이산을 사모하면서도 "궁녀에게도 스스로의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다. 소인은 저하의 사람이지만 제 모든 것이 저하의 것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대꾸하며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영빈의 유품을 훔쳤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도 비록 이산과 중전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것은 군왕 영조를 증인으로 요청하며 '자신이 해야 할 말은 해내고야마는' 그녀의 당당한 용기였다.

영조에게 영빈이 있었던 것처럼, 이산에게 덕임은 이해관계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거울과도 같다. 또한 이산에게 덕임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를 투영하여 '자신이 가장 지켜야 할 소중한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산은 영빈을 사랑한다면서도 그녀와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사도세자를 비참하게 살해하며 영빈을 불행한 삶으로 몰아넣었던 할아버지 영조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다. 이산에게 있어서 곧 덕임과의 사랑이란 '억압된 기성질서에 대한 저항'이라는 성격까지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덕임 외에도 중전 김씨나 제조상궁 조씨 등 <옷소매>에 등장하는 주요 여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선-악 구분을 떠나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쟁취해내려고하는 주동적인 인물들로 등장한다. 이러한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재해석은 그동안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여성들이 암투의 희생양이나 조연 정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궁중 이야기에 한층 입체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옷소매>는 자칫 이미 자주 소비되어 진부해질 수도 있었던 정조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해내며 뜨거운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4일 방송된 8회는 전국 시청률 10.5%, 수도권 시청률 10.3%, 최고 시청률은 13.1%까지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제작비 150억을 들인 대작이었던 <검은 태양>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몇 년간 미니시리즈에서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못했던 MBC의 자존심을 모처럼 <옷소매>가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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