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 '홈술' 늘어 허용을" vs "청소년 구매 등 부작용 커" [뉴스 인사이드]

유지혜 입력 2021. 12. 5. 11:01 수정 2021. 12. 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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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온라인 판매 찬반 논란
성인 84% "코로나 후 집에서 마셔"
이전보다 2배 늘어 판매 요구 높아
스마트 오더·음식 배달 때만 예외 둬
전통주는 보호·육성 차원 판매 가능
정부는 건강 악영향 등 이유로 반대
국회입법조사처 "신중한 접근 필요"
#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홈(home)술’을 즐기게 된 백모(30)씨는 최근 친구 집에서 모임을 하던 중 와인이 부족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켰다. 백씨는 평소 음식을 주문하던 것처럼 와인을 파는 술집에서 배달하려고 했지만, 음식 없이 와인만 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알림이 떴다. 주류는 총 주문금액의 50% 이하로 주문 가능했다. 백씨는 “이미 배가 불러 안주를 많이 시킬 수도 없었고 안주보다 와인 가격이 훨씬 비싸서 결국 편의점에 가서 사왔다”면서 “배달을 받을 때 신분증을 확인하는 방법도 있는데 술만 배달이 안 된다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 ‘애주가’ 오모(31)씨도 온라인으로 술을 주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특별한 날 다량의 술이 필요할 때나, 대형마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집 앞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할 때가 대표적이다. 오씨는 “미성년자가 술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는 등 악용될 가능성을 따져보면 개인이 조금 불편한 게 사회적으로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차가 없는 ‘뚜벅이’ 입장에서는 술도 온라인 주문·배송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늘면서 주류 온라인 판매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의 온라인 판매는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미 비대면 소비가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만큼 술만 예외인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청소년의 주류 구매 가능성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이해관계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많다.

◆10명 중 8명 ‘홈술’ 즐긴다

3일 롯데멤버스 리서치 플랫폼 라임에 따르면 지난 7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6%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주로 술을 마시는 장소로 본인·지인의 집을 꼽았다. 코로나19 확산 이전(40.2%)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반면 술집을 주된 음주 장소로 꼽은 사람은 31%에서 5%로, 식당은 23.9%에서 6.7%로 급감했다.
늘어난 ‘홈술’은 통계청 자료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의 ‘2020년 연간 지출 가계동향 조사’ 결과 지난해 전국 1인 이상 가구가 대형마트 등에서 주류를 구매하는 데 쓴 월평균 금액은 1만5673원으로 전년보다 13.7% 늘었다. 지난해 가구당 소비 지출이 전년 대비 2.3%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술집·식당이 아닌 마트 등에서 술을 사 마시는 ‘홈술족’이 그만큼 증가한 것이다.

◆전통주는 되고 맥주는 안 된다?… “소규모 업체만이라도”

배달 문화가 확산하면서 술 역시 식당이나 마트에서 배달하고 싶어하는 수요도 많아졌다. 그러나 현재 온라인 판매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주류는 전통주뿐이다. 전통주는 1998년 우체국을 통한 온라인 판매가 제한적으로 허용됐고, 2017년부터는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살 수 있다.

지난해 국세청 고시가 개정되면서 전통주 외 주류에 대한 규제는 일부 풀어졌다. 지난해 4월에는 휴대전화 앱 등을 통해 사전 주문·결제한 후 매장에 방문해 주류를 받는 ‘스마트 오더’ 판매가 허용됐으며, 7월에는 ‘1회당 총 주문금액 중 주류 금액이 50% 이하인 경우’에 한해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배달 앱을 통해 주류만 구매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술을 주문하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당초 정부는 전통주를 보호·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전통주만 온라인 판매를 허용했지만,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온다. ‘막걸리라고 다 전통주가 아닌’ 주세법상 규정된 전통주의 정의도 논란거리다.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전통주는 ‘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식품명인이 제조한 술’, ‘농업인이 직접 생산했거나 제조장 소재지 인접 시·군·구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지역특산주’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주류 산업 발전을 위해 소규모 주류제조업체에 한해서는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영세업체 등에 제한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나 부작용도 적고 주류 다양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득보다 부작용 커”… 신중 접근론도

주류 온라인 판매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청소년 주류 구매 등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보건복지부는 주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될 경우 청소년이 다양한 우회 구매를 할 수 있고, 주류 소비량이 증가해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성인인증을 거쳐 술을 팔더라도 실구매자 확인이 불가능해 청소년의 주류 구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소매업자의 생존권 문제도 있다. 주류 유통이 온라인 판매를 통해 제조·수입자에서 소비자로 직접 유통될 경우 영세상인들의 매출이 줄어들고,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잠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수퍼체인유통사업협동조합 관계자는 “2010년 8만개였던 동네슈퍼가 현재 절반으로 줄었고, 그나마 남은 곳들도 매출 대부분을 술·담배에 의존하고 있는데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면 또 절반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며 “한국은 해외 국가들과 달리 술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주류에까지 온라인 판매를 확대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5일 ‘주류 통신 판매 허용 관련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연령과 온라인 판매 제한 외의 다른 주류접근성 제한 정책이 없어 다른 국가들보다 알코올 제품의 판매와 소비 규제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주류 온라인 판매는 다양한 쟁점이 있는 만큼 허용 시 그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OECD 37개국 중 韓·폴란드만 금지 대부분은 시간·지역 판매점 수 제한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증진을 위해 주류 접근성 제한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주류 판매시간이나 지역 판매점 수를 제한하고, 주류광고를 금지하는 등의 제도를 시행하는 대신 온라인 주류 판매에 대한 규제 정도는 낮은 편이다.

3일 관련 업계와 한국노동연구원 등에 따르면 OECD 37개국 중 온라인 주류 판매가 불가능한 국가는 한국과 폴란드뿐이다. 미국에서는 앨라배마·유타·오클라호마주를 제외한 47개 주에서 와인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 또 18개 주와 특별구에서는 와인 외 기타 주류도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주류를 온라인으로 살 수 있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 주요 10개국도 와인·맥주·증류주의 통신 판매를 허용한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은 주류 배달 시 신분증을 확인하는 형식으로 미성년자 구매를 방지하고 있다.

일본은 ‘통신 판매 주류소매업 면허’를 소지한 자에 한해 3000㎘ 이하의 소규모 생산 국내 주류와 수입 주류를 온라인으로 팔 수 있다. 중국은 주종 제한 없이 통신 판매를 허용하고 있지만, 중국 주류시장은 마트와 식료품점 위주로 형성되어 있어 전체 주류시장에서의 온라인 판매 비중은 10.4%에 그친다.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더라도 제품 특성상 소비자들이 주로 전통 채널을 통해 주류를 사고, 고가의 주류나 오프라인에서 구하기 어려운 주류들에 한해서만 온라인 구매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과소비를 조장할 수 있다거나 생필품이 아니란 이유를 들어 통신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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