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판치니 진짜 같은 피해권리 찾기

김선식 기자 2021. 12. 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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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유니온 '5명 미만 사업장' 107곳 고발공휴일법, 중대재해처벌법 피해 가짜 만들 유인도
권리찾기유니온이 2021년 10월27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가짜 5인 미만 나야나 시상식’(가오나시상)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5명 미만 사업장 차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노동자 5명 중 1명(전체 노동자의 19%)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들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다.
노동시간 제한(주 52시간), 수당(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과 휴업 수당), 휴가(연차 유급 휴가)를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 2019년 1월15일 근로기준법에 신설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도 그림의 떡이다. 성별, 장애, 나이 등을 이유로 해고한 게 아니면 해고의 정당성도 따질 수 없다.
노동자 권리 제한은 사용자에겐 그만큼의 자유를 뜻한다.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이 득세하는 이유다. 한 사업장을 여러 개의 5명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거나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를 말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2020년 9월과 12월, 5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2021년 11월24일 한국노총 대선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한발 물러섰다. 11월29일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대해 “사업자의 투자 의욕이라든가 현실을 반영 못했을 때는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어 비교형량해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1일과 2일 약 다섯 달 만에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선 5명 미만 사업장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안건에도 오르지 못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12월1일 ‘근로기준법을 빼앗긴 사람들의 행진’을 진행했다.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이 주최한 행진이다. 서울 광화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여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 사무실까지 걸었다. 행진 종착지인 이재명 캠프 사무실 앞에서 한 여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해고됐다며 회사에 맞서 싸우고 있는 김민정(42)씨다. “21세기에 합법적인 노예제도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있습니다. 마음대로 괴롭히다 일회용품처럼 당일 해고해도 억울함을 다툴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 11조가 피해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어이없는 제도인지 아십니까?”_편집자주

진짜가 좋아 보이면 가짜가 판친다. 5명 미만 사업장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을 우회할 수 있다. 해고 제한, 부당해고 구제 신청, 휴업수당,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연장근로 제한,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가산 수당, 연차 유급휴가 등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그런 혜택을 누리려고 가짜로 5명 미만 사업장을 만드는 사용자들이 있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과 ‘권리찾기유니온’은 2020년 6월부터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을 제보받아 고발하고 있다. 2021년 11월30일 현재까지 약 1년6개월간 가짜 5명 미만 사업장 104곳과 진짜 5명 미만 사업장 3곳 등 총 107곳에 대한 노동청 고발 등을 진행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07곳 중 사건이 종결된 79곳에서 단 3곳만 ‘혐의 없음’ 처리됐다”고 밝혔다.

‘사업장 분리’와 ‘직원 미등록’

권리찾기유니온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은 ‘사업장 분리’와 ‘직원 미등록’이다. 가짜 104개 사업장 중 81곳은 5명 이상 사업장을 5명 미만 사업장 여러 개로 위장하는 수법을 활용했다. 이른바 ‘서류 쪼개기’다. 44곳은 노동자들이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도록 해서 5명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했다. 개인사업자에게 부과하는 사업소득세 3.3%에서 이름을 딴 ‘가짜 3.3’ 수법이다.

두 방법을 모두 활용한 업체도 25곳에 이르렀다. 수법이랄 것도 없이 무단 위장한 기타 유형은 4곳이다. 권리찾기유니온은 “혐의 없음 처리된 3개 사업장 모두 직원을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는 방법을 활용했다”며 “이 경우 제보자뿐만 아니라 같은 사업장에 있는 다른 직원들의 노동자성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짜 5명 미만 사업장’ 고발과 사례 수집은 ‘진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피해 상황별로는 ‘연차휴가 미부여’가 107곳 사업장 중 84곳(78.5%)에서 일어났다. 그 밖에 ‘가산수당 미지급’ 83곳(77.6%), ‘4대 보험 미가입’ 53곳(49.5%), ‘무급휴직 강요·부당해고’ 47곳(43.9%), ‘근로시간 제한 위반’ 45곳(42.1%)이었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21곳)이 가장 많았고 숙박음식업(15곳), 정보통신업(12곳), 사업지원·출판·영상·방송업(10곳), 제조업(10곳) 등이 뒤를 이었다.

“가짜 늘어날 요인 계속 생겨”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은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이 늘어날 요인은 계속 생기고 있다”며 “이전에는 단순히 임금이나 해고에서의 자유 때문이었다면 이젠 (5명 미만 사업장을 적용 제외한) 공휴일법, 중대재해처벌법도 피할 수 있으니 점점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 실장은 가짜 5명 미만 사업장 단속과 함께 현행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입법한 중대재해처벌법과 공휴일법도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이제 죽음과 쉼에서도 차별받는다. 가장 취약한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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