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물류노동자 민혜씨 "우린 그냥 짧게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에요"

한겨레 입력 2021. 12. 4. 14:26 수정 2021. 12. 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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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서울의 한 봉제공장. 사진은 본문과 관련이 없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민혜(가명)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검수·포장하는 물류 노동자다. 할당량은 시간당 47벌. 불량이 없는지, 주머니는 일일이 손 넣어 살핀다. 쪽가위로 실밥을 자르고 족집게로 잡사를 뽑는다. 지퍼는 올리고 단추는 채우며, 간단한 오염은 물휴지로 닦고 구겨진 덴 다리미질. 착착 옷을 개 폴리백에 넣어 포장하고 바코드를 붙인다. 상품 채비를 마친 물품을 진열장에 넣어두기까지, 손놀림이 잰 민혜씨는 니트류는 1시간에 100벌을 넘긴다. 방송 카메라가 그이를 조명한다면 화면에 ‘달인’ 자막이 흐르겠다. 지금 일하는 곳은 1년 반, 홈쇼핑 포함 물류만 10여년이니 ‘경력’을 내세워도 되겠다. 더구나 이전 15년은 봉제공! 빠른 속도로 스치면서 봐도 원단 불량까지 파악하고 웬만한 수선은 완벽히 바로 해결하는데야.

경력 10년 자랑하는 ‘달인’이지만
3개월짜리 계약 3번 뒤 퇴사 운명

퇴직금 못 받는 건 억울하지만

“아이고, 물류 경력은 안 쳐줘요. 그냥 짧게 쓰고 버려요. 실장이 회의에서 ‘아줌마들은 널리고 널렸다, 교체해서 쓰면 된다’ 그랬대요. 나이 든 여자는 갈 데가 없거든요. 구인 공고도 45살까지예요. 불러만 주면 예예, 하면서 열심일 사람이 많아요. 일 잘하는 사람요? 계속 다니면 회사야 좋지만 그만둬도 안 잡아요. 불평불만을 내비치면 ‘그래? 너 그만둬, 네 자리 채울 사람 쌨어’예요. 잘하는 사람 한명 자리에 못하는 두세명 넣으면 된다는 거죠. 아쉬운 건 나니까, 찍소리 못 하고 그냥 다녀야죠. 완전히 소모품이에요, 물류는 특히.”

민혜씨는 3개월 계약직이다. 검수·포장팀과 사입팀, 배송팀 모두 관리자 한둘 빼고 다 그렇다. 석달만 일하냐면 그건 아니다. 관리자가 새 계약서를 작업대에 놔두면 사인하고 계속 일한다. 이런 계약이 세번이면 9개월, 이제 10개월에 들어서면 퇴사해야 한다. 회사는 평소 눈여겨본, 입바른 소리 하는 사람과는 재계약하지 않는다. 해고예고도 해고수당도 필요 없다. 나머지 계속 일할 사람은 15일 뒤에 재입사한다.

“3개월씩도 한 회사에서 1년이면 퇴직금 줘야 하니까 퇴사시키고 다시 받아요. 고용보험 실업급여를 받는 것보단 생활하려면 일해서 얼마라도 더 버는 게 낫죠. 퇴직금 못 받는 건 억울하지만 2주만 빼면은 쭉 생계, 그 돈을 벌잖아요. 그래서 다시 가요. 예전 회사는 1년 계약직에 점심과 간식이 나왔는데, 여긴 아예 없어요. 물류 일은 힘쓰는 일이라 이런 건 줬거든요. 그런데 요즘 밥 안 주고 직원도 다 알바로 고용하는 데가 는대요. 주휴수당 안 주려고 바쁠 때만 두세시간씩 사나흘 쓰고요.”

민혜씨의 노동시간은 주 5일, 아침 6시 반부터 낮 12시 반까지 6시간이다. 계약서상 그렇고 실제는 대중없다. 중고생 자녀가 있고 생계를 책임져 일정하고 적정한 수입이 필요한데, 최저시급에 노동시간마저 보장되지 않아 문제다.

“일이 바쁘면 점심시간 1시간 빼고 3시 반까지 2시간 더 해요. 잔업이라 안 해도 된다지만, 돈 벌려고 나가는데 안 할 사람이 어딨어요. 이 시간까진 기본 시급이고 더 연장하면 수당 줘요. 반대로 회사는 일이 준다 싶으면 4시간만 시켜요. 시간이 유동적이라 월급이 130만~140만원 정도예요. 제일 조금이 108만원, 많이는 160만원 좀 넘었어요. 그런데 회사는 지난해 수익이 크게 났대요.”

여기서라도 일해야지, 버티는 거예요

소모품으로 버려진다는 말은 사실이다. 알바로 시작해 직원까지 6년 일한 이전 회사에서 민혜씨가 겪었다. 계약직이나마 직원으로 퇴직금과 명절 상여금을 받게 됐지만, 일이 몇배로 늘었다.

“직원이 되면 사명감과 애사심을 막 심어요. 일이 있는 대로 다 부려먹죠. 아침 6시 반 출근에 퇴근 시간이 없었어요. 기본 15시간 일했어요. 주 6일요. 주휴수당도 토요일 근무한 걸 휴무로 조작해서 줬다고 꾸며요. 야근수당도 액수와 시간을 다 깎아요. 그래도 말 못 했어요. 아줌마고 나이가 있으니까, 말 잘못 해 잘리면 내가 갈 데가 없잖아요. 벌어야 살잖아요. 실업자가 되면 또 어딜 가야 하나 막막하니까, 그런 걸 다 참고 일해요. 여자들이 다들 생계가 걸린 일이니까 진짜 열심히요.”

몸이 상했다. 민혜씨는 자신이 헌신한 회사를 믿었다. 병가도 산재 처리도 당연했다.

“소처럼 부려먹고, 허리가 아파서 걸음을 한발자국도 못 떼는데, 치료받게 병가 좀 내달랬더니 생각해본대요. 이틀 뒤 전화도 아니고 카톡으로 온 답이 ‘어쩔 수 없네, 그만둬야지’예요. 빼먹을 거 다 빼먹고 버려요. 우리는 병들거나 그러면 버려지고요, 회사는 교묘한 방법으로 피할 거 다 피해요. 어디나 다 그렇지만 여기 물류 아줌마들이 제일 많이 당해요. 물류에 와서 남는 여자들은 내가 생각할 때 그래요. 돈은 필요한데 갈 데가 없어서 아, 여기서라도 일해야지,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아무리 열악해도 일해요. 여기 아니면 내가 진짜 죽어야 한다, 하하, 돈 벌 데가 없다, 그러니까 견디는 거예요, 버티는 거예요. 막 욕 먹어도 버텨요. 사장과 관리자가 자기들 기분 따라 욕하고 소리쳐도요.”

고무줄 노동시간 탓 들쭉날쭉 월급
공기청정기 한 대로 버티는 작업장

쉿! 쉿! 이마저도 없어지면 어떡해

민혜씨는 새벽 3시면 눈뜬다. 이른 출근에 몸이 반응한다. 작업 도중 쉬는 시간 10분은 화장실도 편히 못 가, 집에서 배변을 해결한다. 5시 반, 집을 나서 버스를 타면 6시10분, 회사에 도착한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로 억지로라도 배를 채운다. 6시 반에 시작해 8시간 동안 적게는 400장에서 많게는 600장 옷을 갠다. 손에 딱 붙는 공업용 장갑을 끼면 상처가 덜하련만, 능률을 앞세워 회사는 장갑을 못 끼게 한다. 자잘한 단추부터 청바지 단추까지, 양손에서도 특히 엄지, 검지 손끝과 손톱은 굳은살이 박이고 갈라지고 피 터지고 부러지기 일쑤다.

“레일행거에 옷을 걸고 8천장까지 검수한 적도 있어요. 이쪽 일은 다 서서 해요. 의자를 빼 노동 강도를 높여요. 여긴 점심과 간식 안 주는 대신 의자 준다고 생색내는데, 작업대 높이가 배꼽 위치에 오면 좋은데 너무 낮아 불편해요.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싼값에만 맞추니까요. 의자도 딱 엉덩이만 걸쳐요. 회사는 아마 그게 제일 싸서 샀을 거예요. 그나마도 없는 데가 많아 고맙습니다 해야죠. 이나마도 없어질까 봐 아무도 불평하지 않아요. 이 의자마저 치워버리면 안 그래도 작업대가 낮은데 서서 일하면 허리가 못 남아나니까요. 그래서 누가 의자 얘기 꺼내면 ‘쉿! 쉿!’ 해요. ‘이 의자마저도 없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쉿! 쉿!’”

공기청정기가 한대, 천장 환풍기는 작동하는지 의문인 지하 작업장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잔기침이 터진다. 겨울엔 기관지염을 달고 산다. 코로나 이후로는 퇴근길 버스를 타면 곤혹스럽다. 고개 숙여 간질거리는 목, 기침을 참는다. 쓰디쓴 노동을 참아온 것처럼. 이미 충분히, 지나치게 애쓰며 일해온 민혜씨에게 우리 사회는 최저시급, 퇴직금 안 주는 쪼개기 계약, 불안정한 노동시간, 값싼 작업 환경, 노무직 경력 무시, 정직원과 차별로 대우한다. 2021년의 근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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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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