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한 극우 따라하기..'좌파 일베'의 부캐 놀이

한겨레 2021. 12. 4. 13: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극우정치인 앨릭스 존스
음모론 앞세운 극우 선동가 존스
"극우 캐릭터 '부캐'일 뿐" 주장
국내 좌파 일부도 '일베 용어' 악용
극우에 대응하는 전략은 될 수 없어
극우 선동가 앨릭스 존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인포워즈채널’을 음모론 유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미국에서 활동하는 극우 선동가 중 가장 위험한 인물로 앨릭스 존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무기는 음모론이다. 라디오 방송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9·11테러가 부시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유명해졌고 <인포워즈>라는 유사언론 매체를 설립해 극우 어젠다를 버무린 온갖 황당한 이야기를 송출하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모론가가 되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도 대통령 당선 직전 그의 방송에 원격으로 출연하여 존스의 팬임을 자처한 바 있다.

앨릭스 존스가 펼쳤던 음모론 몇개만 소개해도 이 사람이 얼마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수년째 꾸준히 제기하는 것으로 민주당 정치인들이 악마 숭배자들이라거나 인간의 외피를 쓴 파충류라는 주장이 있고, 워싱턴디시 어딘가에 아동 인신매매 시장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도 아주 진지하게 한다. 이것은 올해 초 있었던 의회 난입 사태를 일으킨 큐어논(QAnon) 집단의 사상적 근간이기도 하다. 개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성지향성을 바꿔버리는 ‘게이 폭탄’이 비밀리에 제조되고 있었는데 이 화학물질이 누출되어 미국 전역의 개구리들이 게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극우 활동은 ‘부캐’가 하는 일?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을 송출하면서 마니아들과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던 가운데 앨릭스 존스는 최근 한 소송에서 패소하여 방송인으로서의 커리어가 걸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2년 겨울, 미국 코네티컷주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한 20살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20명의 초등학생을 포함하여 26명이 사망한 참사가 있었다. 앨릭스 존스는 자신의 방송에서 샌디훅 참사가 가짜라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했다. 총기 규제 어젠다를 강화하기 위한 음모에 불과하며, 피해자들이 모두 연기자였다는 것이다. 그의 방송을 들은 추종자 일부는 유족들의 거주지를 찾아가 유족들을 괴롭혔다. 이들을 피해 이사를 다니던 유족 일부는 참다못해 존스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이에 다른 유족들도 가세해 집단소송으로 번졌다. 수년이 걸린 소송 끝에 코네티컷 법원은 존스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고, 배상금 결정을 위해 그에게 <인포워즈> 수익 내역 제출을 명령했다.

앨릭스 존스의 변호사는 변론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앨릭스 존스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배우라는 것이다. 변호사의 변론에 따르면, 존스가 방송에서 퍼부은 온갖 헛소리들, 폭언, 비상식적인 주장들은 청중을 즐겁게 하는 데 제일 가치를 두는 퍼포먼스이며, 실제 앨릭스 존스와 대외의 앨릭스 존스는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라는 말이다. 이 황당한 주장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면 앨릭스 존스는 일종의 ‘부캐’(부캐릭터)를 연기한 셈이다.

극우 선동가 앨릭스 존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인포워즈채널’을 음모론 유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부캐를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재미와 핍진성(그럴싸함)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른바 ‘부캐 유니버스’를 건설해나간다. 유니버스의 구축은, 부캐가 방송 카메라가 꺼지면 그 존재도 사라지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성장하여 살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관객의 흥미를 유지하고 참여를 유도한다. 특히 이 관객의 참여가 유니버스의 구축을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것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매드몬스터’라는 2인조 남성 그룹은 코미디언 이창호와 곽범이 만들어낸 부캐로,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퍼포먼스, 이미지, 팬들과의 소통의 매너리즘을 풍자하여 웃음과 공감을 끌어냈다. 데뷔와 흥행, 휴식과 컴백까지 정교하게 구축한 세계관에 대중은 기꺼이 몰입한다. 댓글난은 실제 아이돌 그룹을 향한 것과 다르지 않은 응원과 격려, 사랑의 메시지로 가득하고, 대중은 여기저기서 매드몬스터를 봤다는 목격담을 지어내며 유희하는 식으로 세계관을 넓히는 데 동참한다.

앨릭스 존스의 방송 활동이 부캐를 연기한 것이라면,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부캐 유니버스를 함께 구축한 것이다. 존스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모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황당한 음모론에 찬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의 방송 영상을 열심히 공유했다는 사실에 크게 기인한다.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프로레슬링 선수 같은 풍채와 연극배우를 연상케 하는 발성 및 극적인 제스처와 그토록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주장의 결합은 특히 젊은 누리꾼(네티즌)들에게 무한한 재미의 원천이 된다. 젊은 누리꾼들은 존스의 방송 영상을 대중문화 텍스트에 합성하며 유희한다. 물론 조롱하기 위해서다. 조롱과 아이러니, 풍자, 빈정댐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은 앨릭스 존스에 찬동하는 척하는 댓글을 달고 서로 낄낄거린다. 앨릭스 존스의 추종자라는 부캐를 연기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러는 자신이 존스의 위험한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이들의 풍자성 댓글을 보는 사람 중 일부는 그것을 진짜 지지자의 댓글로 착각하고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얻게 된다. 조롱하는 사람들의 부캐 활동은 존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더 신나게 설칠 빌미가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위험천만한 ‘일베 용어’ 따라하기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에 적대적인 좌파 진영 일부에서 이른바 ‘일베 용어’를 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부캐를 연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극우 진영에 의해 오염된 단어를 아이러니한 전유의 전략으로 ‘되찾아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의 발로라고 봐야 할까? 좌파가 극우의 언어를 입에 담는 것으로 언어가 정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좌파의 언어가 오염된다. 몇몇 문화연구자들이 부캐를 고정된 자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출구와 같은 것이라고 했듯이, 좌파적 신념을 알리바이 삼아 일베 용어를 입에 담는 이들은 부캐를 빙자하며 본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