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2%에 물리면 98%가 찬성할 줄 알았나 [ 쓴소리 곧은 소리]
(시사저널=박형수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내년 3·9 대선에서 표심을 움직이는 최대 쟁점이 집값 이슈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실패를 인정한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부자세로 불리는 종합부동산세다. 종부세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이재명과 윤석열의 운명이 갈라질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전 통계청장의 특별 기고를 받아 두 차례로 나눠 게재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편이다. (편집자주)
5조7000억원에 달하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든 95만 명 납세자의 한숨 소리가 전 국민으로 깊어지고 있다. 상위 2% 납세자는 작년보다 1인당 세금이 270만원에서 602만원으로 2배 이상 늘어, 나머지 국민도 다주택자의 종부세 폭탄이 전가되어 전·월세 가격이 인상되거나 조만간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잃고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종부세 위헌청구 시민연대'가 위헌 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5일 만에 1만2662명이 동의한 '다주택자에 대한 약탈적 종부세 중단하라' 등 여러 건의 관련 청원이 올라와 있다. 특히 세금은 간단명료하고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최근의 종부세는 세액 계산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며, 일부 정치인의 의사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세금이 되어버렸다.
부동산 전용 세금계산기 '셀리몬(Sellymon)'을 활용해 종부세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시세 26억원(공시가격 18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가 올해 종부세로 내야 하는 금액이 최소 81만원에서 최대 406만원까지 5배가량 차이가 났다. 연령 및 장기보유 여부에 따라 공제세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별 합산 공시지가가 같은 18억원이라도 서울에 1채(공시지가 14억원), 조정대상지역인 지방에 1채(공시지가 4억)를 가진 2주택자라면 무려 2159만원으로 불어난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사실상 투기 혐의자로 보고 종부세에 징벌적인 과세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데…종부세, 원칙과 섬세함 모두 잃어
지난 3년 동안 부과 대상이 43만 명(83%), 세액은 4조7000억원(499%) 증가했다. 2018년 당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권고했던 897억원 증세안이나 정부 세제개편안의 증세효과 1521억원에 비해 세부담 증가 규모가 엄청나다. 이처럼 종부세가 '세금 폭탄'이 된 것은 주택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 공정시장가액비율 인상, 세율 인상, 세부담 상한제 완화라는 4개의 증세 버튼을 동시에 매우 강하게 눌렀기 때문이다.
우선 종부세는 개인별로 보유주택의 공시가격 합산금액이 과세기준액을 초과한 사람에게만 부과된다. 따라서 과세 대상이 급증한 것은 38쪽 에서 보듯이 지난 2년간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을 통해 공시가격을 크게 올리면서도 정부와 여당이 과세기준액을 종전 6억원(1세대 1주택은 9억원)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금년에야 그것도 1세대 1주택에 대해서만 11억원으로 소폭 인상했다. 기획재정부의 세 번째 해명 보도자료에 따르면 주택분 종부세 고지를 받은 서울 거주자 48만 명의 60.4%인 29만 명이 1주택자였다. 향후 주택 가격 상승이 멈춘다 하더라도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따라 현재 70% 수준인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2030년까지 90%까지 올라가게 되어있어 과세 대상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한편, 종부세 세액은 과세기준액 초과분에 공정시장가액비율(과세표준의 공시가격 반영률)을 곱하고 여기에 세율을 적용해 산출한다. 따라서 부과세액이 급증한 것은 과세 대상의 급증 이외에 80%로 유지되던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19년부터 5%포인트씩 인상해 금년에 95%로 만들었고, 다주택자를 중심으로 세율도 2차례나 인상해 최고세율이 2.0%에서 6.0%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년도 세액의 15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일종의 안전장치인 '세부담 상한제'를 2019년부터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300%로, 법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도록 약화시켜 버렸다. 향후 주택 가격 상승이 멈추더라도 공시가격이 지속적으로 현실화되고 내년부터 공정시장가액비율이 100%로 인상되기 때문에 부과세액이 더 증가할 것이다.
한국의 조세부담률, OECD 평균의 81%이나 부동산 과세는 2배
세금은 반대급부 없이 자원을 국민으로부터 국가에 강제로 이전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나라 살림을 위해 꼭 필요 최소한으로만 징수해야 하고, '응능(應能)의 원칙' 등 엄격한 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부과되어야 한다.
우선 우리나라 조세부담은 2019년을 기준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20.1%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81%에 불과하지만, 주택을 포함한 재산에 부과되는 세금은 GDP 대비 4.05%로 OECD 평균의 2배에 달한다. 조세재정연구원의 '주요국 부동산 관련 세부담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거래세는 1.89%(4.2배), 양도소득세는 0.95%(6.3배), 상속증여세는 0.39%(3.0배)로 선진국보다 세부담이 큰 반면 부동산 보유세만 0.82%(0.8배)에 그쳤다. 그러나 유경준 의원의 추정에 따르면 최근 종부세 강화 조치로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 부담이 2021년 1.20%로 OECD 평균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조세재단(Tax Foundation)의 글로벌조세경쟁력보고서(International Tax Competitiveness Report)에서도 우리나라 조세 경쟁력 순위가 2017년 17위에서 2021년 26위로 5년 동안 9단계나 하락했는데, 특히 재산세 분야 경쟁력이 OECD 37개국 중 31위에서 32위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GDP 대비 세부담이 아니라 부동산 가치 대비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0.16%(8개 OECD 국가 평균의 0.3배)에 불과하니 보유세를 더 강화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①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국민대차대조표 자료의 국가별 부동산 가치는 산출 방식이 나라마다 제각각이어서 직접 비교가 곤란하다. ②우리나라는 높은 인구밀도 때문에 토지와 주택이 비싼 반면 소득 수준이 낮은데 종부세를 통해 미실현소득에 대한 과세만 강화할 경우 납세 능력을 담보할 수 없다. ③취득세를 내고 구입했고 팔 때도 양도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는 등 선진국보다 과중한 거래세를 부담하고 있는데, 이를 하향조정하지 않은 채 보유세를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추가 인상하자는 것은 너무 과하다 등의 반대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종부세를 '현 수준보다 더 높여야 한다' 21.9%, '현 수준 유지' 23.4%, '현 수준보다 낮춰야' 34.2%, '종부세 폐지' 13.6%로 '인하 내지 폐지' 응답이 '인상'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부세 '인하 내지 폐지' 48%, '인상 내지 유지'는 45%
지금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더 부과하는 기준이 소득이나 소비 수준이 아니라 국가가 평가한 부동산 가치여야만 할까? 차기 정권을 위한 경쟁 과정에서 조세정책은 온통 부동산 보유세에 관한 것뿐이다. 특히 이재명 후보의 '국토보유세(기본소득 토지세) 신설'과 윤석열 후보의 '종부세 전면 재검토'가 격돌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2017년 대선 경선부터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각으로 시장의 공급을 늘려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세금 폭탄'을 통해 약 50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탄소세(약 64조원)와 함께 기본소득 지급에 활용할 계획이지만, 기존 종합부동산세, 재산세의 '이중과세'와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의 위헌 소지를 해소해야 한다.
, 윤석열 후보는 종합부동산세의 전면 재검토,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재산세 부담 완화 등 '보유세 완화'를 통해 매물 잠김 현상을 타파하고 부동산 가격 안정을 이루겠다고 맞서고 있다. '부자 감세'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이재명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국토보유세 도입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60.2%로, '공감한다'는 의견(32.4%)보다 2배 가까이 많게 나타나는 등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철회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한발 물러선 양상이다. 2%의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면 나머지 98%가 지지할 것으로 봤던 참여정부가 왜 실패했는지를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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