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개시장 '뜬장' 없앴지만..식용견 금지 이번엔 될까

김영동 2021. 12. 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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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모란·칠성, 최대 개시장 현재는?
구포개시장은 완전 폐쇄..모란·칠성 시장 안팎선 여전히 판매
식용견 합법 아니지만 불법도 아닌 애매한 법 규정도 혼란 키워
대통령·총리도 '금지 검토' 의견..동물단체 "지금이 제도화할 때"
2019년 7월1일 부산 북구 구포개시장에서 동물보호단체 회원이 식용 개 판매업소 쇠 우리에 갇혀 있던 개를 구조하고 있다. 김영동 기자

개고기는 오래된 ‘한국 전통 식문화’의 한 부분으로 여겨졌다. 한국전쟁 이후 개인이나 마을 단위를 넘어 개를 잡아 고기를 유통하는 개시장이 나타났다. 이후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부산 구포개시장, 대구 칠성개시장이 전국 3대 개시장으로 자리잡았고 40~50년 동안 성업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동물 학대 등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크게 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개 식용 중단 목소리가 커지고, 개고기를 즐기는 인구도 크게 줄면서 전국 3대 개시장은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일부는 완전히 폐쇄됐고, 일부는 명맥을 이어가면서도 완전 폐쇄를 위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구포개시장, 완전 폐업했지만…

지난달 11일 찾은 부산 북구 구포시장 근처 옛 개시장 거리는 평범한 시장 거리가 돼 있었다.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는 과거 개를 사육하고 도축하던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고, 분뇨 냄새 등 악취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업소가 몰려 있던 터에는 시장 공영주차장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민 장아무개(68)씨는 “(개 판매) 업소들이 있을 때만 해도 도축한 개를 진열한 모습과 비린내 등이 싫어 이쪽으로 오지 않았다. 이제는 평범한 거리로 바뀌어 좋다”고 말했다.

구포개시장은 한때 70여개 업소가 개고기를 취급할 정도로 번창했다. 2000년대 들어 개시장 폐업을 촉구하는 동물보호단체의 시위가 본격화됐다. 생계가 달린 상인들도 이에 거칠게 맞서며 갈등이 잦았다. 2017년 8월 한 탕제원에서 탈출한 개를 붙잡은 직원이 30m가량 개를 끌고 가는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졌고, 한달 뒤에는 길에 있던 반려견이 붙잡혀 와 이곳에서 도축된 사실도 드러났다. 개시장 폐업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북구는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상인들과 개시장 폐업 대화에 나섰다.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도 가세했다. 여론에 밀린 상인들은 생계 대책 마련을 조건으로 대화에 응했고, 2018년 10월 생계지원금 지급과 폐업에 합의했다. 2019년 7월 상인들과 부산시·북구 등은 ‘구포개시장 폐업’ 협약을 맺었고, 영업은 모두 중단됐다. 도축뿐만 아니라 유통·판매도 하지 않는 완전 폐업은 구포개시장이 처음이었다.

부산시와 북구는 이곳을 반려동물을 위한 생명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뜻에서 동물복지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업소가 몰려 있던 곳의 일부 터 995㎡에 국비 6억원과 시비 14억원을 들여 동물입양카페, 동물병원, 동물보호시설, 동물 미용 등 자격증 교육실이 있는 지상 1~4층짜리 건물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 반대에 부딪혀 사업은 3년째 지지부진하다. 반대 주민들은 공원 등 주민 복지시설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김명석 북구의회 의장은 “주민 뜻에 반해 동물복지센터 건립에 동의할 수 없다. 주민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어 이견을 좁혀나가는 등 지자체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달까지 센터 건립 추진 절차를 밟지 못하면 국비 6억원을 반납해야 한다. 이에 부산시와 북구는 센터 규모를 확대해 다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예산을 40억원으로 두배 늘리고 건물도 8층 높이로 확대해 구포개시장 역사전시관, 펫카페, 주민 복지시설 등을 추가한다는 구상이다. 정명희 북구청장은 “구포개시장 완전 폐장은 생명존중 가치를 실현해냈다는 의미가 있다. 생명존중 가치 실현, 반려동물 친화 도시로 나아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주민들을 만나 반드시 설득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판매 여전한 성남 모란시장

성남 모란시장은 구포개시장에 앞서 폐업이 시도됐지만, 아직도 개고기 유통·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1960년대 형성된 모란시장은 1990~2000년대 초까지 개고기 판매업소가 54곳까지 불어나며 수도권 최대 규모 개고기 유통시장으로 자리잡았다. 2002년부터 한·일 월드컵 개최와 개고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로 점포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2016년에도 하루 평균 220여마리, 한해 8만마리의 개고기가 거래됐을 정도다.

2016년 8월 국회에서 개 도살을 사실상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그해 10월부터 모란시장에서 동물보호단체와 식용 개 산업 관련자가 여러차례 충돌했다.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성남시는 2016년 12월 상인회와 시장 환경정비 업무협약을 맺었다. 상인들은 살아 있는 개를 보관·전시·도살하지 않고, 성남시는 업종전환과 환경정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영업 손실 보전을 위해 △임대료 인하 △업종전환 자금 저금리 알선 △교육·컨설팅 및 경영마케팅사업 지원 △시 소유 공실 점포 입주권 부여 등 지원책을 약속했다.

실익이 없다며 저항하는 일부 상인도 있었지만, 2018년 말 모든 도축업체가 폐쇄됐다. 하지만 일부 건강원 등 7~8개 업체는 여전히 개고기를 팔고 있다. 도축은 사라졌지만 유통은 계속되는, ‘절반의 폐쇄’에 그친 셈이다. 다만 당시 성남시와 상인의 업무협약에서 개 보관과 전시시설 폐쇄에 강제성이 없었고, 개고기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개시장 철폐의 서막을 알린 사건이지만, 동물보호단체가 ‘옥에 티’ 격으로 아쉬움을 드러내는 이유다.

성남시는 상인들을 상대로 업종전환 지원책을 설명하는 등 설득을 이어가고 있다. 성남시 재정경제국 동물자원팀 관계자는 “현행법상 위생 단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개고기 유통·판매 금지를 강제하지 못한다. 상인들도 생계가 달린 문제라 쉽지 않지만, 업종전환 설득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업체 수는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로 보인다”고 말했다.

70년 역사의 대구 칠성개시장은 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복날뿐 아니라 평일에도 보신탕 등 개고기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보신탕집과 건강원 등 50여곳이 성업 중이었으나, 현재는 14곳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시는 시장 정비사업에 따라 지난해 3월과 9월 도살장 2곳을 폐쇄했다. 또 식용 개 판매업소에서 설치한 개를 가두는 ‘뜬장’도 모두 철거했다. 하지만 보신탕집 등 14곳 가운데 11곳이 정비구역 밖에 있는데다, 이들은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고 영업 중인 업소들이어서 시가 강제 폐쇄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구시는 개 식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전업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대구시의회에서는 칠성시장을 반려동물 특화 거리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강민구 대구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월 시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반려동물 사료·의류 등 특화 거리로 업종전환을 유도한다면 칠성시장 근처에 있는 완구골목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개고기 식용 논쟁을 떠나 칠성시장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바꿔 도약하게 하려면 개시장 업종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구시 도시 이미지 변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대구시청 등지에서 칠성개시장 즉각 폐쇄 촉구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7월에는 ‘칠성개시장 완전 폐쇄를 바라는 시민 1만명’ 서명지를 대구시에 전달하기도 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칠성개시장과 관련해 “업종전환 지원 등을 통해 이른 시일 안에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합법·불법 뒤엉킨 애매한 법체계

축산법에서 개는 가축으로 분류되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에는 가축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 가축으로 개를 사육하는 것은 괜찮지만, 개를 도축해 식용으로 판매하고 유통하는 것은 ‘합법’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법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불법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들은 개 식용이 무법을 넘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개 식용 금지가 법적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지만, 개고기가 식탁에 오르려면 온갖 동물 학대와 불법 행위가 동반된다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극악한 사육 환경의 전국 곳곳의 개농장과 유기견 식용 도축 문제 등이 개고기 시장을 떠받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달 25일, 정부의 개 식용 종식 발표에 대해 논평을 내고 “현행법상 이미 불법인 개농장의 철폐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개 식용 종식 연도 확정, 사육 포기 동물에 대한 보호방안 마련, 식용 목적 개 도살과 개 식용 금지의 법적 명문화 등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반대로 대한육견협회에서는 개고기 식용을 법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대한육견협회는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한마디로 망언”이라며 “식용견과 반려견을 구분해 법제화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회적 합의 없이 개 식용을 금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태도다. 식약처는 최근 “국민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개 식용 금지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등 과정을 거친 뒤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개고기는 식품의 기준과 규격을 정한 식약처의 ‘식품 공전’에 포함돼 있지 않다. 식품 공전에 포함되지 않은 음식은 판매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이 개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할 수도 없어 식약처 등이 단속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산 북구 구포시장 근처 옛 구포개시장의 동물복지센터 예정지. 김영동 기자

개 식용을 두고 시각은 엇갈린다. 알앤써치가 성인 1132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29~30일 실시한 ‘개고기 식용 전면 금지에 대한 찬반’을 묻는 조사에서 응답자의 36.3%가 찬성했고, 27.5%가 반대했다. 리얼미터가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일 실시한 ‘개고기 식용 금지의 법 규정 찬반’ 조사에서 응답자 36.3%가 찬성했고, 48.9%가 반대했다.

현실적인 타협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2018년 불법도살을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는 축산법 개정안 등 ‘개 식용 금지법’이 발의됐지만 회기 안에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한정애 의원(현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개나 고양이를 도살·처리해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구 칠성시장 개시장 모습. 김규현 기자

하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는 모양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법안 검토 보고서를 보면, 개 식용 금지가 생산자, 동물보호단체, 관계 부처 등 다양한 의견이 있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이해당사자 간 충분한 사전 논의를 통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태도다.

정부는 개 식용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25일 국정 현안 점검조정회의에서 “개 식용을 ‘오래된 식습관의 문화로만 보기는 어렵지 않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이 문제의 공식적 종식을 논의하기 위해 민관 합동 기구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개 식용 찬반 문제의 결론을 내는 것은 아니고,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알려졌다.

2017년 개 도축 시설 철거 전 경기도 성남시의 모란개시장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지금까지 정부는 사회적 합의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방패로 삼아 개고기 식용 금지에 손을 놓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제도적으로 개 식용 금지에 나서야 할 때다. 동물 학대와 불법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구체적 실행 계획을 세워 강력히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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