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무기다" 공산당 독재에 맞서는 자유인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2021. 12.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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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9회>

<1954년 6월 14일 “중화인민공화국헌법 초안 공포”를 축하하는 장면/ 人民網, people.cn>

헌법 전문, 독재 국가는 길고 자유 국가는 간결하다

오늘날도 많은 정치인들은 헌법 전문(前文)에 특정 과거사에 대한 평가를 삽입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강박증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강박증은 진리를 독점하고 정의를 선점하려는 인간 내면의 뿌리 깊은 독단과 아집에 기인한다. 상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헌법 전문에는 그 어떤 특정 과거사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헌법이 특정 과거사에 관해 전 국민에 똑같은 생각과 일양적인 가치를 강요한다면, 그런 나라는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재국가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중국 베이징 대학 법학대학원의 저명한 헌법학자 장첸판(張千帆, 1964- ) 교수는 이상적인 헌법 전문의 양식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헌법 전문은 일반적으로 매우 길다. 자유주의 국가의 헌법 전문은 대체로 간결하다. 바람직한 헌법 전문은 오로지 제헌 주체, 제헌 목적 및 헌법의 기본 원칙만을 간결하게 기술해야 한다. 그래야만 헌법 전문이 사람들에게 장중하고도 엄숙한 인상을 줄 수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뒤에 이어지는 헌법 본문이 국가가 신중하게 이행해야만 하는 법률 의무임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장첸판 교수의 지적대로, 독재국가의 헌법은 일반적으로 전문(前文)이 장황하다. 자유국가의 헌법은 대체로 전문이 소략하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이란의 헌법 전문은 이슬람혁명의 주요사건을 서술하며, 코란을 직접 인용해서이슬람 율법의 절대권위를 강조한다. 반면 미국의 헌법전문은 자유와 평화의 일반규정을 담은 52개의 단어로, 독일기본법 전문은 세계평화와 국민주권 등을 명시한 48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의 “중화인민공화국헌법”과 타이완의 “중화민국헌법” 역시 이와 비슷한 대조를 보인다.

중국 헌법 전문은 200자 원고지 10장, 대만의 ‘중화민국 헌법’ 전문은 75자

“중화인민공화국헌법”의 “서언(序言, 전문)”은 1,898자로 200자 원고지 10매를 넘는 분량인데 반해 “중화민국헌법”의 전문은 75자에 불과하다. 1982년 개정된 “중화인민공화국헌법”의 “서언”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실용주의, 장쩌민의 “세 가지 대표사상” 등등 중공중앙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국가적 기본 이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아편전쟁 이래 현대사에 관한 중국공산당 특유의 역사관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국가의 궁극 목적, 노동자·농민·지식인의 기본 책무, 중국공산당의 지배 당위, 타이완과의 통일 의무까지 기재돼 있다.

이와 달리 1946년 12월 25일에 제정된 중화민국헌법은 다음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화민국 국민대회는 전체 국민의 뜻에 따라 중화민국을 건립한 쑨원(孫文) 선생의 유교(遺敎)에 의거해 국권 확립, 민권 보장, 사회 안녕 및 인민 복리의 증진을 위해 다음 헌법을 제정하여 모두가 준수할 수 있도록 전국에 반포한다.”

타이완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지만, 중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헌법 전문의 길이와 국민이 누리는 자유 정도는 대체로 반비례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왜 그러할까?

<2014년 베이징 법학대학원의 저명한 헌법학자 장첸판 교수의 모습/ wikipedia.org>

자유주의 헌법일수록 높은 추상수준의 기초원리만을 기술하는 반면, 비자유주의(illiberal) 헌법일수록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내용이 다수 포함되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월저(Michael Walzer)의 표현을 빌면, 자유주의 헌법은 “얇고(thin),” 비자유주의 헌법은 “두껍다(thick).”

자유주의 헌법은 최대한 많은 구성원, 최대한 다양한 집단을 포용하기 때문에 전문(前文)은 얇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비자유주의 헌법은 전 국민에게 특정 역사관, 특정 종교관, 특정 이념, 특정 사상을 강요하기 때문에 전문(前文)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얇은 헌법은 그만큼 다양한 집단, 다양한 사상에 개방적이다. 구성원에게 더 많은 요구조건을 내거는 두터운 헌법은 역으로 한정적이고 폐쇄적이다.

“헌법 전문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등 ‘4항 기본원칙’을 삭제하라!”

중국의 법학자, 철학자 및 언론인이 중국 헌법의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적잖은 전문가들은 장황하고도 독선적인 중국 헌법의 “서언”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피력해 왔다. 젊은 시절 다양한 사상을 접하고 반우파 운동 당시 우파로 몰려 20년의 세월 동안 고초를 겪었던 두광(杜光, 1928- ) 교수는 이미 2009년 인터넷 포럼에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중국) 헌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장편 서언이다. 이 서언은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신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개조의 성취를 나열하고, 나아가 중국공산당이 계속 사회주의 혁명 건설을 영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계급투쟁, 통일전선, 민족단결, 국제관계 등 문제에 기본 방침까지 기술한다. 이러한 서술의 목적은 일당독재의 합법성 확립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또한 큰 문제는 바로 서언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세 가지 대표’(장쩌민 이론) 등 ‘4항 기본원칙’의 견지를 직접 언급한다는 점이다. 소위 ‘4항 기본원칙’은 이론적으로 그릇되어 정교한 분석에 견딜 수가 없으며, 실천적으로도 유해하다. “4항 기본원칙”을 전국의 인민에 강제하여 헌법 속에 담긴 민주성의 실현을 저해할 합법적 근거는 없다. 특히 (장쩌민이 설파한) ‘세 가지 대표’와 같이 졸렬하고, 이론적, 논리적으로 결함투성이의 세 구절을 전 인민의 지도사상으로 만드는 행위 자체가 공민의 지능지수에 대한 모욕이자 국내외의 웃음거리이다. 그런 구절의 헌법 삽입은 일당독재를 분식(粉飾)하고 공민의 권리를 말살할 뿐더러 헌법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장엄함과 신성함을 파괴한다.”

<1954년 9월 2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정을 경축하고 있다. /wikipedia.org>

2011년 5월 13일 화둥(華東) 정법대학에 재직했던 장쉐중(張雪忠, 1976- ) 교수는 헌법 제41조에 규정된 “공민 건의권”을 활용하여 당시 중국의 교육부 장관에 공개서한에 보냈다. 이 서한에서 장 교수는 다음과 같이 건의한다.

“중국인의 이성과 양지(良知) 방면의 무상 주권을 존중하고, 중국인의 사상자유를 확장하고, 중국인의 개체 존엄을 빛내고 드높이기 위해 교육부는 대학 및 석사과정 입시에서 정치 과목을 철회하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원리, 마오쩌둥 사상 및 덩샤오핑 이론 등의 과정을 대학생 공통 필수 과목에서 철폐해 주시길 바랍니다.”

장 교수는 형식적으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중국의 헌법을 들어서 국가가 마르크시즘과 같은 신념 체계를 개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을 논리적 근거로 들었다. 그는 인간이 정부를 구성한 목적은 개개인의 안전을 보장하고, 자신의 복리를 촉진하고,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무법상황을 막기 위함이기 때문에, “신념의 문제에선 정부가 그 어떤 권위도 향유할 수 없다”는 고전적인 자유주의 논변을 펼쳤다.

박진감 넘치는 두 교수와 장 교수의 문장은 후진타오 정권 말기 중국의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헌정논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의 위헌성을 폭포하면서 입헌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까지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헌법에 규정한 인권 존중, 사상과 언론 출판의 자유 보장하라!”

시진핑 정권이 막 출범하던 2013년 1월 중국의 대표적인 비판 저널 <<염황춘추(炎皇春秋)>>의 편집부는 신년호 권두에 “헌법은 정치 체제 개혁의 공통 인식”이라는 제목의 “신년 헌사(獻詞)”를 게재했다. 좌우 2단 한 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이 시론에는 중국에서 법치를 실현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 문제의 시론은 중국 헌법과 일당독재의 사이의 괴리를 날카롭게 파고 든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중국 헌법 제57조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최고의 국가권력기관”이라 규정하고, 제62조는 전인대의 15개 직권을 명시하며, 제63조는 국가주석, 국무원총리 등을 파면할 수 있는 권력까지 부여하지만, 실제로 전인대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거수기에 불과하다. 헌법 제13조는 국가는 법률 규정에 따라 공민의 사유재산권과 상속권을 보장하지만, 현실에선 사유재산을 침범하는 악성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헌법 제33조는 국가가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한다고 규정하지만, 폭력적인 집행과 간섭이 창궐하고 있다. 헌법 35조는 언론, 출판 등 여러 자유를 보장하지만, 중국에선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약하는 수많은 불법적 인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헌법 제126조는 법원의 독립성을 규정하지만, 법원은 공신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다.

<“염황춘추” 웹사이트. 웹사이트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 병필직서(秉筆直書, 붓을 잡고 바르게 쓴다), 이사위감(以史爲鑑,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 여시구진(與時俱進, 시대와 더불어 나아간다)”의 구호가 적혀 있다./ yanhuangchunqiu.com>

결국 이 시론의 요지는 헌법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고, 헌법에 명시된 권리와 자유 규정을 중국의 현실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헌법 그 자체가 아니라 헌법을 자의적으로 악용하는 공산당 일당독재의 전횡이라는 지적이다.

“모든 법치국가는 정치 체제를 설계할 때 반드시 헌법을 근거로 삼아야만 한다. 헌법을 ‘허치(虛置, 공허하게 방치)하면, 중국 인민에 대한 신뢰를 잃을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신뢰도 상실하게 된다. 국가는 무신불립(無信不立), 곧 신뢰를 잃으면 존립할 수 없다. 헌법이 신뢰를 잃는 상황은 반드시 바꿔야만 한다. 헌법은 국가의 근본 대법이다. 헌법의 권위는 지고무상(至高無上)이다. 헌법에 의거해서 정치 체제의 개혁을 추진해야만 한다는 점에 대해선 쟁의가 있을 수 없다. 이미 헌법은 정치 체제 개혁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리는 반드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공허하게 방치된 헌법을 현실의 제도 및 법률 체계로 되살려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치체제 개혁은 실질적으로 헌법을 보위하는 행동이다.”

“공허하게 방치된 헌법을 정치 개혁의 무기로 활용하자”

“공허하게 방치되었던” 헌법을 정치 개혁의 무기로 활용하자는 선언이다. 두광 교수가 주장하듯 중국의 헌법은 민주성과 전제성이 결합되어 있다. 문제는 중국공산당의 권위에 의해 전제성이 민주성을 짓밟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시론의 요점은 중국 헌법이 전제성에 굴복하기 보단, 중국 헌법의 민주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정치 체제의 개편을 시도해야 한다는 이른바 헌법 보위의 투쟁 선언이다. 일당독재의 무기로 악용되었다 해도 현행 중국헌법에는 공민의 기본권과 사상, 언론, 출판의 자유가 적어도 형식적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가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가 미국 독립선언서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구를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무기로 활용했던 바로 그 투쟁의 전술이다. 가장 효율적인 정치논쟁의 출발점은 상대와 내가 동시에 인정하는 상식의 기반에 올라서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바로 그 상식의 기반을 공식(共識, 공통된 인식)이라 부른다.

<2010년대 후베이성 우한의 한 가판대, 오른쪽에 “염황춘추(炎皇春秋)가 이미 도착했음”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중국 인터넷>

2010년부터 중국의 인터넷에서 진행돼온 “헌정민주”의 담론이 급기야 중국공산당과의 법리 투쟁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였다. 많은 지식인들은 <<염황춘추>>의 당당한 논조와 정치한 논리에 열광했다. 2014년 가을 집계로 <<염황춘추>>의 판매부수는 거의 20만권에 달했고, 2008년 이래 홈페이지에 게재된 거의 모든 기사가 조회수 1천만 이상을 달성했다. 물론 시진핑 정부가 날로 커져가는 <<염황춘추>>의 영향력을 그대로 방치할 리 만무했다. 헌법의 보위를 외치며 기본권의 보장을 주장하는 대륙의 자유인들을 중국공산당은 어떤 법리로, 어떤 수단으로 짓밟고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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