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승만·박정희도 즐겨 찾던..이땅의 '첫 경양식당' 96년만에 폐업

황예림 기자, 오진영 기자 2021. 12.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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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전 지어진 우리나라의 첫 경양식 식당 '서울역그릴'이 문을 닫았다. 일제강점기에 설립돼 한국에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처음으로 들여온 '역사적인' 식당이지만 코로나19(COVID-19)가 불러온 영업 한파를 이기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식당에는 폐업 소식을 듣고 '마지막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개장에 '최초 경양식당' 된 서울역그릴도 코로나19 한파에…"매출 반토막"
1925년 옛 서울역사에 개업한 서울역그릴의 내부 모습/사진제공=문화역서울 284

4일 서울역그릴과 한화역사에 따르면 서울역그릴은 코로나19(COVID-19)에 따른 영업 부진으로 지난달 30일 폐업했다. 서울역그릴은 일제강점기 개업해 한국에 처음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선보인 식당이다. 개업 당시 요리사 40명을 두고 손님 200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러나 100년 가까이 이어져온 이곳도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한파를 이기지는 못했다. 여행 등 이동이 줄면서 서울역을 찾는 유동인구도 크게 줄어든데다가 인근 업소들도 잇따라 영업을 중단하며 매출이 크게 준 탓이다. 서울역사를 운영하는 한화역사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지속된 근 2년 동안 서울역그릴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걸로 안다"고 말했다.

폐업 당일에는 찾아간 서울역그릴 입구에는 '2021년 11월 30일 영업이 종료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날은 폐업일이라 4가지 메뉴만 주문이 가능했지만 폐업 당일에도 소식을 들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위해 가게를 찾았다는 윤모씨(53)는 "내가 초등학생 때에도 대학생 때에도 신혼부부 때에도 자리를 지켰던 가게가 사라지니 기분이 너무 허전하다"라며 "한 때 '이곳에서 돈가스를 먹었다'면 동갑내기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때가 있었을 정도"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학 시절 데이트를 위해 이곳을 즐겨 찾았던 오모씨(58)는 "신촌에서 여기까지 집사람(예전 여자친구)와 걸어왔다 돈가스가 너무 비싸서 1개로 둘이 나눠먹었던 기억이 있다"며 "한때는 비싼 식당의 대명사 같은 곳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니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토 히로부미·박정희도 즐겨찾던 곳...철도청 직원 외상값 때문에 '적자' 허덕이기도
구 서울역사를 소개하는 '문화역서울 284'에서 서울역 그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사진=문화역서울 284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역그릴은 한국전쟁과 외환위기 등 한국사의 많은 굴곡을 함께해 왔다. 1983년 4월10일 조선일보 기사에는 "서울역그릴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식당이자 유일한 국영식당"이라며 "1925년 10월 15일 문을 연 서울역 그릴은 당시로서는 유일한 양식 고급식당이어서 이용객들은 주로 일본총독부의 고관 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뿐만아니라 "이승만 전 대통령도 이 그릴을 이용했고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 대통령 등도 지방 출장 때면 잠시 들러가곤 한 고급스런 식당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근대 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 이상도 이곳을 즐겨 찾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소설 '날개'에도 "나는 메뉴에 적힌 몇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번 읽었다"는 대목이 등장할 정도다. 조선 최초의 빙상선수인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가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일본 국적으로 출전)에 참가하기 전 이곳에서 환송행사를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서울역그릴의 위상을 반영하듯 과거 신문에는 서울역그릴에 관한 크고 작은 기사가 종종 실려있다. 1973년 경향신문(8월24일자)은 철도청여객과의 분석을 인용해 서울역그릴이 적자에 허덕이는 가장 근본적 원인은 교통부와 철도청 고급간부들이 이곳에 가서 외상으로 먹고 외상값을 갚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1963년부터 10년동안 쌓인 외상값이 650만원인데 이 중 450만원이 교통부와 철도청 등의 고급간부들의 외상값이었다고 한다.

1972년 11월12일 경향신문에는 서울역그릴 지배인 이모씨가 수익금 중 10% 해당하는 봉사료 연 2400만원 중 32만5000원을 가로채 횡령혐의로 구속됐다는 보도도 있다.

서울역그릴은 민영화를 두고 처음으로 논란이 일었던 곳이기도 하다. 개점 당시에는 철도청이 운영해 오던 서울역그릴은 영업 적자가 점점 쌓이면서 민영화를 검토했으나 직원들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1972년 매일경제(5월5일)는 '전국열차식당과 서울역그릴에서 종사하고 있는 200여명의 철도노동조합원들은 교통부는 서울역그릴을 민영화하려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울역그릴은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1987년 프라자호텔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후에도 수차례 사업자가 바뀌다 2004년 한화역사가 KTX 서울역사를 완공하며 서울역사 4층으로 장소를 옮기고 2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왔다.
96년 역사 가진 이곳, 어떤 가게 뒤 이을까
30일 폐업하는 한국 첫 경양식 식당 '서울역그릴' 앞에 영업 종료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사진=황예림 기자

서울역그릴이 사라진 장소에는 다른 상호의 스테이크 전문점이 들어올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한화역사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장소는 다른 위치에 비해 유동인구가 많지만 임대료가 높지 않아 고정적인 수요가 있는 자리다. 한화역사 측은 약 6개월에 걸쳐 서울역그릴이 위치한 4층을 리모델링한다고 밝혔다.

서울역그릴은 송파구 롯데월드몰에도 '1925 서울역그릴'이라는 이름으로 영업 중이다. 일부 손님들은 "다른 장소로 위치를 바꿔서라도 재개장해달라"고 아쉬움을 드러냈으나 서울역그릴 관계자는 "이 장소를 폐업하고 위치만 바꿔 영업을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완전 폐업이 맞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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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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