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만필]'하얀거탑'은 오늘도 여전히 질문한다

여론독자부 2021. 12. 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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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병원 주임과장 자리 놓고 암투·갈등
과장된 면도 있지만 현실 잘 그려내
인간미 있는 따뜻한 의사도 좋지만
결국 환자 살려야 좋은 의사 아닐까
[서울경제]

의학 드라마 중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한 드라마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7년 1월에 방영됐던 ‘하얀거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얀거탑은 드라마로 만나기 전에 책으로 먼저 읽었다. 약 30년 전 대학에 입학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 일본 소설을 추천해줘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책을 드라마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가 컸었다.

드라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떤 의학 드라마는 실제 병원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기 불편했는데 하얀거탑은 의사의 눈으로 봐도 거슬리지 않을 만큼 대학병원의 실상을 잘 그려낸 드라마였다.

하얀거탑에는 두 명의 대조적인 의사가 등장한다. 한 명은 김명민 배우가 열연한 장준혁이고, 다른 한 명은 이선균 배우가 열연한 최도영이다. 장준혁은 천재적인 외과 의사로 권력에 대한 야망이 큰 인물이다. 반면 최도영은 권력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고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인간적인 의사다. 둘 다 유능한 의사지만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니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많다.

장준혁은 외과 주임과장인 이주완(이정길 분)의 뒤를 이어 주임과장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대학병원의 주임과장은 실력만으로는 차지하기 어려운 자리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지만 전임 주임과장의 인정과 지원이 필요한데 이주완은 장준혁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실력은 뛰어나나 인간성이 결여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노민국(차인표 분)을 영입한다. 그는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없는 편이지만 승부욕이 강하고 실력도 장준혁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뛰어나다.

그때부터 주임과장 자리를 둘러싼 본격적인 암투와 갈등이 시작된다. 장준혁은 주임과장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장인의 돈과 의대 동문회장의 인맥, 부원장의 권력을 등에 업고 상대방을 공격하고 후배 의사들을 동원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뇌물로 사람을 매수하고 협박하는 일도 다반사다.

‘대체 대학병원 주임과장이 어떤 자리기에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병원의 실상을 잘 모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드라마처럼 암투를 벌이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순조롭게 주임과장이 되는 경우도 많다. 약간의 과장과 비약은 있지만 주임과장이 되는 과정은 현실과 어느 정도 부합해 많은 사람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병원 주임과장이란 그 과의 수장이다. 인사권이 있어 그 과에 지원한 인턴 중 누구를 뽑을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과의 정책을 정하고 살림을 총괄한다. 주임과장이 그 과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또한 한 과를 총괄 지휘하는 수장을 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없는 명예임이 분명하다. 물론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다. 주임과장이라고 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이제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하얀거탑을 보면서 ‘좋은 의사는 어떤 의사일까’를 생각하고는 했다. 최도영처럼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의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장준혁처럼 권력을 좇는 의사는 나쁜 의사일까.

장준혁은 권력만 좇는 의사는 아니었다. 실력 또한 출중했다. 비록 환자에게 최도영처럼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공감해주는 의사는 아니었지만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여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수술도 성공적으로 해내는 의사다. 의사는 결국 환자를 낫게 해줘야 하는 사람이다. 비록 최도영처럼 인간미는 없지만 치료가 어려운 환자도 살려낸다면 장준혁 역시 좋은 의사가 아닐까.

나는 어떤 의사일까. 당시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필자는 장준혁과 최도형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묻고는 했다. 하얀거탑이 끝난 지는 오래지만 그때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본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 나는 어떤 의사인가를. 그러면 앞으로 어떤 의사로 살아야 하는지 답이 보인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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