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끝)발사체 제작 경험, 핵융합로 수주로 이어지다

조승한 기자 2021. 12.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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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 단원구 비츠로넥스텍 공장 안에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연소기가 놓여 있는 모습이다. 안산=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지난달 22일 경기 안산 단원구에 있는 비츠로넥스텍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길이 3m는 족히 넘는 거대한 유선형 금속성 장치가 반짝이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체 주변에 선명한 줄무늬가 나있는 모습이 흡사 주름치마를 연상케 했다. 이 거대한 장치의 정체는 지난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첫 도전에 나섰던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2단에 들어간 75t엔진 연소기와 같은 모델이다. 연소기는 연료와 산화제를 태운 뒤 화염을 밖으로 뿜어내 발사체가 우주로 오를 수 있는 추력을 만드는 엔진의 핵심 부품 중 하나다.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3300도가 넘는 화염을 견뎌야 하는 극한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누리호에 들어가는 1단 75t 엔진과 2단 75t 엔진, 3단 7t 엔진에 쓰이는 연소기는 길이와 크기가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태어난 곳은 모두 이곳 비츠로넥스텍 공장이다. 조황래 비츠로넥스텍 기술본부장은 “연소기 하나를 위해 공장 내에 전자빔 용접, 브레이징(두 개의 재료를 합금을 사이에 놓고 가열해 붙이는 기술) 장비 등 각종 설비를 구축했다”며 “접합 기술뿐 아니라 가공, 용접, 시험기술을 모두 축적해 뭉쳐낸 하나의 기술로 탄생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 한국형발사에 엔진 연소기 출생지

자료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소형 우주 발사체다. 길이 47.2m, 무게 200t인 3단형 발사체로 무게 1.5t의 인공위성을 고도 600∼800㎞의 지구저궤도(LEO)로 올려보내는 용도로 개발하고 있다. 지난 10월 첫 발사 시도에서는 3단 7t 엔진이 산화제 탱크 압력이 떨어지면서 46초 일찍 연소가 종료됐고 결국 목표 궤도에 올랐지만 위성 모사체를 안착시키지는 못하면서 1차 발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1단부터 2단까지 액체엔진 성능이 검증되면서 비츠로넥스텍을 비롯한 누리호 개발 참여업체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검증받는 주요한 이정표가 됐다.

비츠로넥스텍은 에너지 분야 기기와 부품, 소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비츠로그룹의 6개 계열사 중 우주항공, 플라스마, 가속기 등 특수사업 분야를 담당하는 계열사다. 두 물체를 이어붙이는 접합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췄다. 지난 1998년 과학로켓 3호(KSR-Ⅲ)의 액체로켓 엔진 연소기 개발 사업부터 국내 우주사업에 참여해 왔다. 한국형발사체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선행기술 개발 사업부터 참여해 가스발생기 국산화와 고압 배관 등 참여 범위를 확장했다. 

누리호 부품 가운데 연소기는 5년 이상 투자할 정도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누리호 엔진은 극저온 연료를 연소기 벽 사이 통로로 흘려 고온으로부터 보호하는 재생 냉각 방식을 활용한다. 연소기는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같은 모양이 두 겹으로 겹쳐진 방식의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조 본부장은 “3000도 이상의 초고온과 산화제의 영하 180도 이하 초저온, 수십 기압 이상의 고압을 다 견뎌내야 한다”고 말했다.

발사체의 연소기 제작에 필요한 접합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회사로서도 큰 도전이었다. 연소기의 규모가 지금껏 다른 설비에서는 없었던 규모이기 때문이다. 연소기에 쓰이는 구리 합금을 용접하는 것도 평범한 용접기로는 불가능하다. 공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전자빔 용접 장치는 용접물을 넣는 진공챔버를 2단 연소기를 넣을 수 있는 4m 이상 크기로 제작됐다. 연소기 부품들을 통째로 넣고 용접하기 위해서다. 조 본부장은 “한국에서는 2단 연소기가 들어갈 만한 대형 진공챔버를 가진 곳이 없다”고 말했다.

누리호 연소기와 같은 대형 부품을 용접할 수 있는 전자빔 용접 장치다. 오른쪽 진공 챔버는 2단 엔진의 연소기가 들어갈 수 있을 크기로 제작됐다. 안산=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공장의 가장 깊숙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선 곳에는 충차(성문을 무수는 공성용 병기)를 닮은 초대형 장비 3기가 설치돼 있었다. 2단 75t 엔진의 연소기를 제작하기 위해 설치한 가장 큰 장비는 길이만 15m가 넘었다. 연소기 동체를 겹쳐 붙일 때 활용하는 회전 브레이징 장비다. 브레이징은 붙이려는 두 재료 사이에 접착용 소재를 놓고 온도를 가해 접착용 소재만 녹게 만들어 부품을 붙이는 기술이다.  이 장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쪽은 거대한 연소기를 붙잡아 작업을 하고 다른 한쪽엔 진공챔버가 설치돼 있다. 연소기를 구성하는 구리합금 소재 사이에 접착소재를 넣고 연소기를 붙잡고 있는 부분을 진공챔버에 밀어넣어 가열한 뒤 다시 빼내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연소기를 완성해 나가는 원리다. 

재생 냉각 방식은 액체엔진용 연소기에 주로 활용되는 기술로 대형 엔진에서는 기술이 어려워 적용되지 않았다 보니 75t급 엔진에 이같은 기술이 적용된 사례는 해외에서도 드물다. 조 본부장은 “시험용 제품까지 포함하면 총 7기의 2단용 75t 엔진 연소기가 여기서 제조됐다”며 “기술을 전수하러 온 우크라이나 연구진도 이런 거대한 연소기를 어떻게 만들었냐며 놀랐다"고 말했다.

비츠로넥스텍은 발사체 엔진 연소기 이외에도 가스발생기, 터빈 배기부, 유연 배관 제조, 나로우주센터 연소시험 설비 후류처리 설비 구축사업에도 참여했다. 이 가운데 가스발생기는 터보펌프를 구동하는 가스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연료가 많은 연소가스를 만들어 터보펌프를 분당 수만회까지 돌리는 기능을 한다. 터빈 배기부는 가스를 배출하는 장비로 그냥 가스를 버리지 않고 산화제 탱크를 가압하는 극저온 헬륨을 기체 형태로 만들어주는 열 교환기 역할도 한다. 연소기와 비슷한 구조를 띤다. 유연배관은 누리호가 엔진 추력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엔진의 출력 방향을 트는 '짐벌' 동작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누리호가 날아가면서 엔진이 움직이는데 이때 배관도 함께 움직이도록 기능을 하는 것이다.

누리호 2단 75t급 엔진 연소기 제조에 활용되는 브레이징 설비의 모습이다. 안산=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비츠로넥스텍은 비츠로테크에서 우주항공과 플라즈마 등 특수사업 분야를 2016년 물적분할해 설립된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 649억 원, 영업이익 61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비츠로넥스텍의 2019년 기준 우주 분야 매출은 약 181억 원 규모로 나타났다. 조 본부장은 “시험설비사업을 포함하면 2012년부터 지금까지 누리호를 통해 약 1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비츠로넥스텍은 누리호를 통해 대형화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갖춘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한국형발사체를 하면서 실제 현장에 쓰이는 대형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는 것이다. 조 본부장은 “누리호를 개발하면서 제품이라는 개념으로 대형 부품을 접근하고 표준화를 시켰다는 것이 큰 성과”라며 “기술적 난제를 해결한 것뿐 아니라 엔진에 쓰이는 부품들 구현할 인프라를 갖춘 게 크다”고 말했다. 현성윤 비츠로넥스텍 연구소장은 “30년 격차가 난다고 여겨지던 엔진 분야 부품 기술을 10년 이내로 따라잡았다”고 말했다.

누리호 부품 제작에 참여한 비츠로넥스텍 직원들이 누리호 2단 엔진 연소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산=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우주산업에서 대형 부품을 다뤄본 경험은 가속기와 핵융합연구로 같은 과학 분야 다른 대형 기기 사업 수주로도 이어졌다. 비츠로넥스텍은 프랑스 카다라쉬에 건설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2018년 145억 원 규모 내벽 코일 전류전달장치, 지난해 12월 130억 규모 진단장치 보호용 1차벽 제작사업을 수주하는 등 ITER 주요 부품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190억원 규모의 ITER 수직 안정화 코일 제작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수직 안정화 코일은 1억도 이상 초고온의 불안정한 플라즈마를 수직으로 잡아줘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장치다.

우주발사체 사업에 참여하면서 회사 이름도 널리 알려지고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홍보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조 본부장은 “비츠로란 회사가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효과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며 “액체로켓 엔진을 개발하는 기업이라는 측면에서도 하이엔드 기술과 품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기대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비츠로넥스텍은 이번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액체로켓 엔진 부품을 제조하는 전문회사로 성장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비츠로넥스텍은 우주용 부품들을 3차원(3D) 프린팅으로 제조하는 시설을 설치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해 우주분야 연구소들과 함께 연소기와 엔진 부품에 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김진형 비츠로넥스텍 액체로켓엔진팀장은 “3D 프린터로 우주 부품을 브레이징 대신 구리 합금으로 한 번에 제조하는 게 우주업계에서 가장 화두”라며 “조금씩 형상을 바꿔가는 것도 유리해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비츠로넥스텍은 3D 프린터를 활용해 우주 부품을 찍어내는 연구도 항우연과 함께 진행중이다. 안산=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3D 프린팅은 복잡한 형상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접합도 필요하지 않아 우주 부품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우주스타트업 ‘랠러티비티 스페이스’처럼 우주발사체를 초대형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기업도 등장했다. 비츠로넥스텍도 20억 원 규모의 대형 3D 프린터를 이달 중 도입할 예정이다. 조 본부장은 “우주산업을 하려면 장기적으로는 3D 프린터를 들여올 수밖에 없다”며 “뉴스페이스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도 인프라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누리호 고도화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떨어지는 등 우주사업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은 어려움이라고 했다. 비츠로넥스텍이 개발한 누리호용 브레이징 장비는 연소기 제작을 마친 지난해 이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차례도 가동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장비의 크기가 커 옮기거나 할 수 없어 공간을 그대로 차지하고 있다.

2027년까지 누리호를 4대 추가로 발사하는 누리호 양산사업이 올해 예타를 통과하기는 했으나, 이미 앞선 사업에서 누리호 1기를 제조해 추가 제조계획은 누리호 3대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마저도 다음 발사가 2024년으로 예정돼 다음 누리호 제조시점이 언제일지는 불투명하다. 조 본부장은 “누리호 부품 개발에 참여했던 인력이 70여 명 정도인데 현재는 상당수 인력을 핵융합장치 등 다른 제조 분야로 임시로 배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누리호 발사에서는 ITER 등 다른 사업으로 인력을 돌렸지만 제작에 함께 참여한 협력업체는 누리호 개발에 활용했던 장비를 그대로 놀린 채 후일을 기약하는 상황이다. 비츠로넥스텍도 나로호 발사 실패 당시에는 발사체 사업이 멈추자 울며 겨자먹기로 가정용 열교환기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조 본부장은 “발사체 개발기업에서는 사업기간이 35년인 ITER를 부러워한다”며 “장기적 사업계획이 수립되고 방향이 이어지는 게 보장돼야 기업들도 미래를 보고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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