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영 PD의 방송 이야기] 또다시 개편의 계절
학교는 아니지만 방송국에도 학기가 있다. (분명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을 것만 같은데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매년 봄가을에 단행하는 대규모 개편 때문이다. 설과 추석 연휴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도 이 물갈이 타이밍을 노려 편성표에 입성하려는 것이다. 마치 새로운 학기를 앞두고 입학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달까. 최근에는 시즌제 프로그램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정규 프로그램은 개편이 다가오면 연장·종료 여부가 결정되기에 긴장하게 된다.
프로그램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때로는 시청률이, 때로는 광고 판매율이, 때로는 화제성이나 시청자 반응이, 드물게는 출연진의 스케줄 문제나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원인이 된다. 회사 차원의 유무형적 이익뿐 아니라 많은 출연자와 제작진의 명예(와 생계)가 달린 중대한 결정이므로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려운 결정이라고 해서 언제나 장고(長考)를 거쳐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면 냉정하게 전격적으로 개편하기도 한다. 어느 시의 구절처럼 ‘주먹 쥔 손으로는/ 티끌을 주울 수 없고/ 누구한테 꽃을 달아줄 수도 없는’ 법이니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연진과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 하고 아쉽게 헤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반대로, 울고 불고 끌어안고 기념사진까지 찍어가며 쫑파티를 한 다음 날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하고 머쓱하게 연락을 돌린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개편 경험은 SBS 주말 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던 ‘반전 드라마’였는데, 쫑파티를 무려 세 번이나 했다. 종영됐다, 연장됐다, 다시 종영됐다, 추가 촬영이 잡히고, 한두 달을 더하고 나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마지막 쫑파티 때에는 ‘이번에는 진짜야?’가 화제의 중심이었을 정도. 다들 프로그램 제목 덕분(?)에 끝까지 ‘반전’이 너무 심했다며 웃은 기억이 난다.
PD들 처지에서 개편은 소속 프로그램이 바뀌는 혼돈의 계절이기도 하다. 학기마다 전학을 다니는 것도, 오래 다니던 학교를 떠나는 것도 스트레스이듯이 환절기와 함께 개편 철이 찾아오면, PD들은… 가끔… 눈물을 흘…리게 된다. 급히 들어가야 하는 새 프로그램은 새 프로그램대로, 폭탄을 맞은 마음을 추슬러가며 방송을 마무리해야 하는 종영 프로그램은 종영 프로그램대로 (늘 그렇듯) 사람이 부족하다. 밀린 휴가도 가고 싶고, 다음엔 이전과는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커리어 관리도 하고 싶은데 맘처럼 쉬울 리 없다. 그런데, 국장이 되고 보니 이렇게 저렇게 속상한 PD들을 설득해서 이렇든 저렇든 프로그램들이 돌아가게, 새로운 편성표가 자리 잡게 만드는 것도 눈물 나는 일이더라… 이런! 그러나 눈물은 카메라 뒤의 사정일 뿐, 화면 안의 세상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 PD의 숙명이니 어쩌겠는가.
“어떤 요일이든 상관없어요~ 꼭 본방 사수할게요!”
이번 주 부분 개편이 이루어지며 ‘금요일은 밤이 좋아’가 순식간에 ‘화요일은 밤이 좋아’로 변신하게 되었다. 치열한 금요일 밤에 동시간대 1위도 하고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이라 아쉬운 마음이었다가, 시청자들의 열렬한 댓글에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심기일전하고 있다. TV를 사이에 두고 마음을 주고받는 이 느낌이 바로 방송의 진짜 매력 아닌가 싶다. 따뜻한 응원에 보답하려면 결국 눈물을 훔치고 열심히 일할 수밖에! 하며 개편 몸살을 으쌰으쌰 이겨내고 있는, 방송가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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