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가 반대로 말린 달팽이, 짝을 찾아요

채민기 기자 2021. 12. 4.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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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도서관]

왼손잡이 달팽이

마리아 포포바 글|핑 주 그림|김선영 옮김|라임|44쪽|1만3800원

이 달팽이의 이름은 ‘제레미’. 달팽이를 연구하는 앵거스 교수가 영국 유명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노동당 대표를 지낸 그 정치인이 ‘왼쪽’으로 분류되듯 제레미는 껍데기의 나선 무늬가 왼쪽(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나선이 오른쪽으로 말려 있는 보통 달팽이들 사이에서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좌우바뀜증’. 이것은 내장 기관의 위치도 좌우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런 제레미를 왼손잡이에 비유했다.

제레미가 짝짓기를 하려면 다른 좌우바뀜증 달팽이를 만나야 한다. 워낙 가능성이 희박해 앵거스 교수는 라디오에 나가 호소한다. “제레미의 짝을 찾아주세요!” 영국과 스페인에서 좌우바뀜증 달팽이가 한 마리씩 발견돼 앵거스 교수의 연구실로 보내진다. 제레미는 짝을 찾을 수 있을까?

조금 다른 모습의 제레미도 똑같이 소중한 생명체다.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정치적 관점이 아닌 생명과 유전이라는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생명의 신비를 일깨운다. 제레미는 태고부터 대대로 전해져 온 유전 인자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계기로 발현된 경우인지도 모른다. 생명의 시간은 무궁하다.

/라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제레미는 런던 국립자연사박물관 출신 은퇴 과학자가 발견해 노팅엄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앵거스 데이비슨 교수에게 제보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제레미의 짝을 찾는다는 계획이 2016년 10월 발표돼 비슷한 달팽이들이 연구용으로 채집됐으나 제레미는 1년 뒤 죽었다.

당시 뉴욕타임스가 전한 부고(訃告) 기사는 “제레미를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기사에 따르면 제레미 사후에도 왼손잡이 달팽이의 번식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며,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좌우바뀜증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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