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잠시 찬란한
[경향신문]
숨 가쁘게 옮겨가는 유행의 물결 위에서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유속을 지켜보면 세상의 변화가 빠르다 싶지만, 그것이 일종의 착시라는 것을 안다. 기득권이 지배하는 삶의 근본적인 토대, 세상의 시스템이란 쉽게 변하지 않으므로.
“살면서 변화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지 않나. 하지만 변화는 미세하게라도 일어나고 있다. 결국에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지난 몇 년 동안,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며 주류의 역사 속에서 소외된 퀴어 커뮤니티의 기억과 경험, 이야기를 아카이빙하고 엮어온 작가 이강승의 말은 다만 어려울 뿐 불가능하지는 않을 ‘변화’를 향한 희망을 붙잡는다.
이강승은 작지만 절실한 변화를 위해 억압의 시간을 극복해 온 이들의 역사를 예술의 언어로 담는데, 연필 드로잉, 금실 자수, 태피스트리 등 섬세하고도 노동집약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소수자들의 흔적을 차분하게 담는 작가는, 나약하지만 지워져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태도를 연약할지언정 울림 있는 언어에 싣는다.
“나는 내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의 합이다.” 우리는 결코 ‘성’이나 ‘섬’처럼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관계는 국경, 문화, 세대, 더 나아가 시대를 넘나들면서 펼쳐진다고 믿는 작가는, 관계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려 한다.
그는 퀴어 커뮤니티의 기억이 있는 남산, 탑골공원, 낙원동 등을 오가며 채집한 돌을 그렸다. 누군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주류의 역사에서 지울지라도,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자연, 인간이 만들고 남긴 오브제에는 “인간의 기억을 넘어선 다른 언어”로 기록되고 전해진다는 진리를 담담한 돌의 목소리에서 듣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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