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거리 이름에 담긴 다채로운 이야기
토지의 가치를 매기는 수단으로 여겨져
영국선 '레인' 미국선 '레이크' 붙은 지역
다른 주소지의 주택 가격보다 훨씬 높아
센트럴파크의 트럼프타워 주소 바꾸고
10년간 뉴욕 초호화 아파트로 입지 굳혀
감염병 통제나 통계 집계 등서도 필수적
국내에선 2014년 ‘동(洞)’으로 표기했던 기존의 주소 대신 도로명 체계가 도입되자 집값에 미칠 영향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서울 대치동이나 삼성동, 반포동, 목동처럼 지명만으로 ‘집값 프리미엄’이 붙었던 지역의 특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가령 삼성동은 ‘봉은사로’라는 도로명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집값 프리미엄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명주소가 도입된 지 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름값’하는 지역에 동 표기를 고수하는 모습이다.
비단 부동산에 민감한 국내의 유별난 사례가 아니다. 영국에서는 ‘스트리트(street)’에 있는 주택이나 건물은 ‘레인(lane)’에 있는 건물에 비해 가격이 절반 수준에 그친다. 미국에서는 주소에 ‘레이크(lake)’가 붙은 곳이 전체 주택 가격의 중위 가격보다 16배나 높다. 호주의 빅토리아주에서는 저속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거리에 있는 건물 가격이 20%가량 낮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주소가 단순히 위치를 지정하는 수단을 넘어 토지의 가치를 매기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신간 ‘주소 이야기’는 주소의 기원과 역사를 탐색하고 주소 체계와 거리 이름에 담긴 다양한 이슈를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인 디어드라 마스크는 미국은 물론 영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주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런 흐름을 이해하면 주소의 값어치가 높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돈만 있으면 주소를 사거나 팔 수도 있다. 뉴욕시는 개발업자 1인에게 매력적인 주소로 변경할 수 있는 신청권을 1만1000달러에 판매한다. 실제 파크애비뉴가 아닌데도 파크애비뉴 주소를 갖기 위해 비싼 값을 지불하려는 사람은 많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부동산 개발회사는 ‘콜럼버스 서클 15번지’를 ‘센트럴파크 웨스트 1번지’로 변경하는 안을 뉴욕시에 제출했는데, 그 마케팅 효과는 상당했다. 센트럴파크 웨스트 1번지에 세워진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드 타워’는 지난 10년간 뉴욕 초호화 아파트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최근에는 구글과 같은 기업에 의한 디지털 주소가 등장하며 주소의 가치와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진짜 주소에만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강조한다. “디지털 주소는 분명 삶을 더 편리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줄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사는 곳을 지도로 그리고 이름을 짓는 것과 같은, 집요하고 이견이 끊이지 않는 공동체와 관련된 일을 계속해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게 될 것이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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