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전략마인드 갖고 큰 그림 보는 국익 외교를

2021. 12. 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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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하버드대 방문교수·전 외교부장관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정책 논쟁들은 실종돼버렸다. 언론 보도도 가십성 기사들로 가득 차 있다. 걱정되는 마음에서 외교와 관련해 한두 가지 짚어 본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전략 마인드가 중요하다. 전략이란 쉽게 말해 ‘가용한 자원을 갖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체계적 행동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국가들은 달성하려는 목표가 있는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나 국력은 한정돼있다. 그렇기에 지도자가 말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면, 최소 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려는 프로다운 전략 마인드가 긴요하다. 세계 최강대국들로만 둘러싸인 분단국 한국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 없다.

「 나라에 ‘친’‘반’ 붙이는 유일한 한국
때론 좋아도 냉정, 싫어도 협력해야
‘동맹 대 민족’ 허구적 이분법 버리고
외교적 연결고리 읽는 큰그림 봐야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성적 요인이나 선제된 이념을 철저히 배제하고 냉철한 국익 계산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 여론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 감성을 추종만 한다면 외교는 표류할 것이다. 외교를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골퍼의 어깨에 힘 들어갔을 때처럼 공은 엉뚱한 데로 날아갈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직후 국민들의 분노를 여과 없이 수용한 채, 선악 관점이 강한 신보수주의 이념으로 외교에 접근해서 이라크와 아프간 수렁에 빠져든 것이 그 사례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1938년 9월 뮌헨 협정에서 히틀러에게 양보하고 돌아온 네빌 챔벌린을 영국 국민들은 평화의 사도라면서 열렬히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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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 인식 속에 보수는 친미·친일이요, 진보는 친중·반일이라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다. 나라 앞에 “친”, “반”의 형용사가 붙어 유통되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아마 한국일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이 이득이냐를 따지지 않고, 호불호의 원초적 감성이나 이념을 앞세운다면 그것은 무모한 일이다. 미·중이 서로 강하게 부딪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감성적으로는 싫은 국가와도 때로는 협력하고, 좋은 국가에 대해서도 냉정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국민 여론은 일본에 비우호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득을 위해 필요하다면, 과거사 문제는 당당하되 충분히 전략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과거사 문제와 안보경제 협력을 분리해 접근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 국익과 호혜성의 원칙 하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분명히 그어두고 때로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나라 대접을 제대로 받는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맹국인 미국이라 해서 우리의 생존이 걸린 북핵 문제나 한반도 현안 처리 방식이 100퍼센트 정답이고 우리 이익에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경우, 동맹이라는 틀 안에서 설득 노력을 하고 때로는 불협화음도 감수해야 한다. 국익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따라 필요시 국민들을 설득하는 지도력을 발휘할 때, 지도자는 탁월한 ‘정치가(statesman)’로 역사에 남는다.

또한, 지도자는 모든 양자 외교 관계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그 연결 고리들이 만들어내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퍼즐 한 조각만이 아니라 그 조각들이 연결돼 이뤄내는 전체 그림을 파악하고, 어떤 그림을 만들어갈지 비전까지 가져야 한다. 그동안 양자 관계들이 서로 연계되어있는 점을 무시한 채 외교를 하다, 뒤에 가서 부작용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2000년대에 유행했던 ‘동맹이냐 민족이냐’라는 허구적 이분법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력은 세계 10위권인데 19세기 말 독립운동 하던 때의 저항적 민족주의 세계관에 머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냉전 이후 지난 30년간 남북관계가 잘 풀렸을 때는 한·미 협력이 잘되었던 김대중-클린턴 대통령(1998~2000) 때 뿐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정책을 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한·미 관계를 잘 가져가서 미국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같이 가줘야 핵 문제도 남북관계도 풀릴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초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방정책을 시작할 때 미국은 회의적이었다. 키신저 안보보좌관은 감상적이고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꾸준한 신뢰감을 심어줘 미국이 결국 동방정책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동맹은 민족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필수 수단이지, 양자 중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서독 정치인들은 일찍 알았던 것이다.

한·일 관계도 한·미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북한 위협을 막기 위해 미군을 주둔시키는 미국 관점에서는 한국은 전방기지고 일본은 후방기지다. 일본 보수 정객들의 잘못된 수정주의 역사관이 근본 문제였지만, 지소미아를 협상 카드로 들고나온 것은 그러한 연결고리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미국 쪽에서 동맹을 약화하겠다는 것이냐는 뉘앙스로 강하게 반발하자 지소미아 문제는 조용히 들어갔다.

우리가 ‘동맹이냐, 민족이냐’하는 19세기 식의 감성적 양분 논리에 젖어있는 한, 미국을 우리 쪽으로 끌어와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를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만드는 것은 힘들 것이다. 차기 지도자는 부디 냉철한 현실 감각과 전략 마인드를 갖고, 큰 그림을 보며 철저한 국익 외교를 펼쳐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윤영관 하버드대 방문교수·전 외교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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