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의 부캐? 연애소설도 썼다
홍난파 지음
홍시
작곡가 홍난파(1898~1941)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곡만 작곡한 게 아니다. 소설도 썼다. 그것도 아주 잘 썼다. 1923년 같은 제목으로 출간됐으나 난해한 고문헌 수준이었던 것을 현대문으로 고쳐서 최근 출간한 소설집 『향일초』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음악가였지만 소설가이기도 했다.
소설집에는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주제, 분량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표제작 ‘향일초’와 ‘사랑하는 벗에게’는 당대의 신풍속 자유 연애가 주제다. 기생이 나오고, 기생 때문에 속을 끓이는 한량 음악가가 나오고, 애틋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예술가 연인이 나온다. 요즘 단편소설 분량만큼 길다. 그에 비하면 나머지 세 편, ‘물거품’ ‘살아가는 법’ ‘회개’는 불과 몇 쪽 안 된다. 주제도 다르다. 세상은 어떤 곳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문제를 다뤘다. 소설집 해설을 쓴 안동대 강사 김민수씨에 따르면, 홍난파는 외국 문학작품 번역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일 텐데 ‘회개’ 같은 작품에는 위고의 『레 미제라블』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같은 작품들이 역력하게 녹아 있다.
어쨌든 홍난파의 소설들은 100년 전 소설들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건드린다. 이유가 뭘까. 일종의 시간 여행 초대장이다. 단순히 복고 감성을 자극하는 레트로 상품이 아니다. 당대의 풍속, 가치관, 사고방식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다. 가령 ‘향일초(向日草)’ 속의 연인들은 인생의 진리는 사랑 안에 흐르고 있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벗에게’의 연인들은 지금처럼 SNS나 e메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편지를 그저 천수답처럼 애타게 기다릴 뿐이지만 그래서 더욱 간절해진다. ‘사랑하는 벗’ ‘경애하는 H씨’로 서로를 높여 부르면서도 “결국 애인의 손을 잡고 폭포 아래로 뛰어들게 될는지도 모”르겠다는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는 어쩌면 균열 없는 세계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모습들이 반드시 사라진 풍속인 걸까. 소설의 재미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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