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추억의 흔적..헌책을 찾는 사람들
윤성근 지음
프시케의 숲
『헌책방 기담 수집가』. 이 책에 눈길이 간 건 ‘기담’이 아니라 ‘헌책방’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고전을 공부하고 글 쓰는 일에 매달려 살다 보니 서점에 제목은 올라 있는데 절판됐거나 혹은 사람들의 기억에선 잊힌 책을 찾아다녔던 나름의 고충이 떠올라서다.
그러다 어찌어찌 헌책방을 뒤져 그 책을 찾아냈을 때의 희열, 인터넷에서 재고를 보유한 서점을 찾아 주문하고 책을 받았을 때 밀려오는 한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헌책이 주는 행복을 잘 알기 때문이다.
헌책을 찾는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책. 이 책은 헌책방 주인이 헌책을 찾아주면서 사례 대신 손님에게 왜 그 책을 찾는지 사연을 들어주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첫사랑에게 쓴 첫 연애편지에 인용했던 문장이 담긴 책을 찾아 수년 동안 헌책방을 돌아다닌 노년의 신사, 초등학교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부부가 어린 시절 두 사람과 얽힌 추억의 책을 찾아 나선 사연, 소설가를 꿈꾸며 평생 습작을 해왔으나 생활에 쫓겨 꿈만 소설가로 남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 사연은 다채롭게 펼쳐지고, 읽다 보면 저절로 그 사연에 몰입하게 된다.
책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전하는 29편의 진짜 이야기들은 어느 것도 간단치 않다. 누구의 인생도 그리 단순하지 않듯이 말이다. 이 책에선 헌책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사연뿐 아니라 옛날에 나왔던 책들을 발견하는 것도 의외의 재미를 준다. 『사랑과 인식의 출발』(구라타 하쿠조), 『모눈종이 위의 생』(조선작),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에밀 시오랑) 등 생소한 제목의 책들이나 지금도 출판되는 책이지만 1960~80년대에 발간된 책의 표지를 보게 되는 것도 새롭다.
책이 구세대 유물로 취급 받는 시대. 책을 쓴다고 하면 “차라리 유튜브를 하라”는 성화에 시달리는 이 시대에 그래도 책을 끼고 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책을 쓰고, 읽고, 이제는 흔적이 희미한 책들마저 찾아다닌다는 것. 그렇게 책과 사람은 하나로 엉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책의 존재 가치를 다시 일깨워 준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양선희 대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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