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출신 권동진 선생 독립사상..탄생 160년 학술대회

김정수 기자 2021. 12. 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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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출신 독립운동가 우당(憂堂) 권동진 선생(1861~1947)의 생애와 독립사상을 짚어보는 학술대회가 3일 오후 괴산문화원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권동진 선생 탄생 160년을 맞아 열린 학술대회는 괴산문화원·충북학연구소와 충북학연구소·괴산향토사연구회가 마련한 가운데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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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외활동 중 눈에 띈 것은 교육으로 실력양성
생가 소수면 아성마을 제기..독립기념관 자료 정정해야
괴산출신 독립운동가 우당(憂堂) 권동진(1861~1947)의 생애와 독립사상을 짚어보는 학술대회가 3일 오후 괴산문화원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뉴스1

(괴산=뉴스1) 김정수 기자 = 충북 괴산출신 독립운동가 우당(憂堂) 권동진 선생(1861~1947)의 생애와 독립사상을 짚어보는 학술대회가 3일 오후 괴산문화원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권동진 선생 탄생 160년을 맞아 열린 학술대회는 괴산문화원·충북학연구소와 충북학연구소·괴산향토사연구회가 마련한 가운데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했다.

이날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우당 권동진의 생애와 민족독립운동'에서 "권동진의 민족·독립운동 전개와 자주국가 수립을 위한 통일전선운동은 6·10만세운동과 신간회, 광주학생운동(민중대회사건) 등으로 이어졌다"며 "1930년대 대외활동 중 눈에 띄는 것은 교육으로 실력을 양성한 것이었다"고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권동진의 3·1운동 초기단계 주도와 독립사상 피력'에서 "3·1운동으로 붙잡힌 권동진은 의연하게 법정공방을 펼치며 독립사상을 피력했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부정하며 10년간의 통치를 비판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동진은 희생의 밀알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민족대표 가운데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파종론(播種論)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우당 권동진 선생.(독림기념관 자료 갈무리)© 뉴스1

김근수 괴산향토사연구회 고문은 '충북 괴산출생 권동진의 친필시문과 유허지'에서 "그동안 기록과 임야대장 등을 종합해 살펴보면 생가는 소수면 아성마을(아성2리)일 가능성이 높다"며 "독립기념관 자료에 아성1리(애재) 기록과 사진은 정정해야 옳다"고 지적했다.

주제 발표 후에는 정삼철 충북학연구소장을 좌장으로 정을경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오대록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강사가 종합토론을 했다.

권동진은 손병희 영향으로 천도교 간부로 3·1운동을 주도하고, 좌우합작 신간회운동 때 회장으로 추대되는 등 독립운동에 획을 그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학술대회는 유튜브 채널(충북학연구소)로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522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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