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는 이가 없어"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2021. 12. 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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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가 없어." 최근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

'섣달 눈이 처음 내리니 사랑스러워 손에 쥐고 싶습니다. 밝은 창가 고요한 책상에 앉아 향을 피우고 책을 보십니까. 딸아이 노는 양을 보십니까. 창가의 소나무에 채 녹지 않은 눈이 가지에 쌓였는데, 그대를 생각하다가 그저 좋아서 웃습니다.'

그동안 많이 들어온 단어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중요한 의미망을 구축할 것으로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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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아무도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가 없어." 최근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 그중 한 분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심히 던진 이 말씀에 두어 분이 조용히 맞장구를 치신다. "그렇지요…. 요즘은 더 그래요."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모임 이후 그 말이 한동안 마음에 남았다. 처음에는 노년층이 겪는 사회적 단절 문제나 개인적인 인간관계 관점에서 생각해 보다가 차츰 '요즘은 더 그렇지요'라는 말이 비중 있게 다가오기에 자연스럽게 나와 주변을 좀 더 찬찬히 돌아보는 중이다.

그리고 12월. 모처럼 한가한 시간. 밝은 햇살 드리운 책상 앞에 앉아 글 더미와 노래 꾸러미를 뒤적이던 중 오랜만에 마음 따뜻한 '노래 인사'를 건네받으며 '궁금해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 한승석씨가 부른 《그대를 생각하며 웃습니다》라는 노래다. 

'섣달 눈이 처음 내리니 사랑스러워 손에 쥐고 싶습니다. 밝은 창가 고요한 책상에 앉아 향을 피우고 책을 보십니까. 딸아이 노는 양을 보십니까. 창가의 소나무에 채 녹지 않은 눈이 가지에 쌓였는데, 그대를 생각하다가 그저 좋아서 웃습니다.'

이 노래는 김홍도(1745~미상)·오주석(1956~2005)·한승석·정재일의 합작품이다. 18세기 화가 김홍도의 편지 속 문구를 미술사학자 오주석이 특유의 감성과 문장으로 살려냈다. 이후 한승석과 정재일, 두 아티스트가 피아노와 노래로 그들의 시간에 감응해 '간결하고' '간곡하게' 마음을 담아냈다.

피아노 선율과 절제된 판소리 창법이 편안하게 맞아떨어져 몇 번이고 반복해 들어도 그저 좋기만 한 이 노래가 오늘은 한동안 소식 뜸했던 이들에게 계절 안부를 여쭐 때라는 메시지로 들려와 새롭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핑계로 다른 이에게 마음 내주는 일에 점점 인색해지고 있는 우리의 일상. '누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 그를 생각하며 그저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여유가 한줌이라도 남아있는지 되돌아보라'고 한 말인 것 같아 뜨끔해졌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노래 링크를 달아 마음 닿는 분들에게 계절 안부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오늘, 이 노래가 참 고맙다.

팬데믹을 겪고 있는 오늘을 '불확실성의 시대'로 진단하는 경제학자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상화를 꼽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기반 사회가 구축됨에 따라 우리는 이전과 다른 방식의 교류와 소통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에 겪어보지 않은 이런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위기의 시대를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소통과 교류, 신뢰와 협력, 상생과 공존, 정신적 웰빙 등등. 그동안 많이 들어온 단어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중요한 의미망을 구축할 것으로 예견된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뛰어난 지도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위기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불안을 걷어낼 방안을 찾고 행동하는 동안 개개인들에게는 어떤 계획이 있어야 할까. 적어도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고립되고 소외되는 상황은 적극적으로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서로를 궁금해하는 '정리(情理)'라는 말을 나의 주요 키워드로 꼽아보고 싶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12월 동안. 친한 이들에게 이 말씀으로 계절 안부를 여쭈며, 《그대를 생각하며 웃습니다》라는 노래 링크를 준비해 봐야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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