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100장의 지도, 엑스레이처럼 인류를 해부하다

김유태 2021. 12. 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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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0년:인류의 미래를 위한 100장의 지도 / 이언 골딘·로버트 머가 지음 / 권태형 외 옮김 / 동아시아 펴냄 / 3만2000원
인구가 2000만명으로 비슷한 미국 뉴욕주(왼쪽)와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의 밤을 대조한 위성사진. 저자는 두 장의 사진에서 전 세계의 에너지 불평등을 지적한다. [사진 제공 = 동아시아]
호르헤 보르헤스 소설에 등장하는 '현실과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진 제국의 지도'를 들어본 적 있는지.

근대 한 제국의 전도(全圖)는 지리학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현실의 세부 지점과 정확히 대응했다고 한다. 지도는 그 나라의 크기와 같았다. 기상천외한 허구의 지도는 보르헤스의 몽상 속에서 잉태됐지만 정확해지고 세밀해지려는 인간의 근대적 욕망을 반영한 비상한 상징으로서 후학에게 굉장한 영감을 건넸다. 옥스퍼드대 교수인 저자가 쓴 '앞으로 100년'을 읽으며 보르헤스의 제국전도가 떠오른 건 왜일까. 책이 인류의 어제와 오늘, 인류 앞날을 오차 없이 들여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방대한 세계를 단권으로 압축해 세계의 현재를 사유케 만드는 책이다.

먼저 '불평등의 지도'부터 펴자. 저자는 도시의 불빛으로 불평등을 시각화한다.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와 미국 뉴욕주의 위성사진이 대조된다. 두 도시의 인구는 각각 2000만명 정도인데 뉴욕주 불빛이 라고스와 인근 도시 전체의 빛을 삼킨 명도보다 밝다. 뉴욕주 하나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체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실증적 수치는 에너지 불평등의 현장을 증거한다. 따지고 보면 이집트 파라오와 마야의 통치자 이후로도 불평등은 존재했다. 신정일치의 중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러서도 산업혁명 수혜는 중산층에만 귀착됐다. 지금은 어떤가. '하루 생계비 1.9달러 이하'로 사는 최빈곤층이 4억명 이상이다. 코로나19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극빈의 지도는 신랄하다. 저자는 불평등 극복의 강력한 수단으로 교육의 평등을 주장한다. 부자 부모가 가난한 부모보다 아이에게 취학 전 교육 기회를 제공할 기회가 5배 많다는 사실도 수치로 분석된다.

'이민의 지도'는 더 직접적이다. '난민 17명'을 뜻하는 지도의 한 점은 은하수를 연상시키듯 세계지도의 위도와 경도를 가로지른다. 저자는 지도를 사용해 잘못된 난민 신화를 배격한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으로 떠나는 줄 알았던 난민들은 출신국의 인접국으로 피신했을 뿐이다. 터키(370만명), 파키스탄(140만명), 우간다(120만명)가 난민을 떠맡았다.

이민자 범죄율도 그릇된 난민 신화로 배격된다. 난민 공동체 거주자의 범죄율은 수용지역의 평균 범죄율보다 낮았다. 이민자들이 받는 혜택보다 그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민자의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하라는 주문도 덧붙인다.

'폭력의 지도'는 인간의 아픔을 다룬다. 학살당한 예멘 민간인은 2015년 이후 10만명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중동과 아프리카의 분쟁지역보다 분쟁지역 '밖'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더 많았다. 저자가 내미는 세계의 살인 분포, 누적 보고된 유럽 테러 사건 분포, 미국의 증오단체 분포도, 전 세계 수감 인원 현황 등의 지도는 폭력의 지옥도다.

세계는 더 위험해졌고 더 불안해졌다. 저자 표현을 빌리자면 인류는 지난 수천 년간 '살인 기술'을 완성했고, 전쟁을 유희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의 '20년 평화'는 최근 발생한 10년간의 무력 분쟁으로 인해 인류 역사의 페이지에서 '짧은 평화'로 기록될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지도는 엑스레이로 인류를 해부하듯 다양하다. 아프리카·중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모든 폭력 사건, 불법 원자재 밀거래 흐름도, 중국 H7N9(조류독감) 전파 시뮬레이션, 세계 사멸 위기 언어 분포도, 20년간 넷플릭스 서비스 제공 국가 지도, 상위 10개국 스타벅스 매장 분포도 등 세계 속 인류의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지도가 단 한 권으로 꿰매졌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지도란 뭘까. 지도는 인류사에서 지형을 표기한 종이로만 기능하지 않았다. 지도는 권력이었다. 위정자들은 지도를 도구로 타자를 정벌하고 관리했다. 지도가 소유자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시간이 흘러 양상은 달라졌다. 포털사이트 위성사진과 구글어스는 인류를 지표면이 아닌 우주 차원에서 조감하게 해준다. 클릭과 터치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세계에서 어떤 지도를 보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다시 보르헤스로 잠시 가보자. 사실 위 소설에서 제국전도는 결국 태양과 추위에 버려진다. 원형과 똑같은 크기의 모사(模寫)로서의 지도는 커도 너무 컸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석학 이언 골딘의 책에 담긴 100장의 지도와 인포그래픽은 지구의 시간을 100장으로 나눠 세분한 인류의 초상과 같다. 이 책은 제목처럼 22세기를 향해 떠나는 21세기 인류의 내비게이션이 될 수 있을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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