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크' 들어가면 집값 더 비싸다고?..주소가 권력이다[BOOKS]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주소의 출현이 불가피했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작가 디어드라 마스크의 저서 '주소 이야기(The Address Book)'는 주소의 기원과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현대식 도로명 주소가 출현한 것은 불과 250여 년 전이다. 주소는 정치권력이 백성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사람을 찾아 감시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징집 대상자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영국 의회는 1765년 모든 가옥에 번호를 붙이고 숫자가 눈에 잘 띄도록 문에 써 둘 것을 명령했다.
영국 시민들의 저항은 상당했다. 하지만 주소가 주는 이익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된 건 1850년대 확산된 콜레라 덕분이다. 콜레라 사망자들의 주소가 파악되면서 방역 조치가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영국인들은 점점 집 주소가 적힌 우편물이 문에 있는 구멍을 통해 '쿵' 하고 떨어지며 나는 소리를 사랑하게 됐다.
저자는 미국 전역뿐 아니라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과 한국, 일본, 인도, 아이티,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전 세계 사례를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주소에 담긴 정치경제학적 함의도 파헤쳤다. 주소가 현대사회의 계급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은 새로울 것도 없는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스트리트(street)에 있는 주택이나 건물이 레인(lane)에 있는 건물보다 절반이나 낮은 가격에 거래됐고, 미국에선 주소에 '레이크(lake)'가 들어간 주택은 전체 주택 가격의 중앙값보다 16% 높았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같은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주소가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비싸 보이는 주소를 건물에 붙여 부동산 가치를 높이려고 애썼다. 주소에 교회(church)나 예배당(chapel)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동네에 사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다는 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주소가 정체성과 소속감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얘기다. 책을 읽다 보면 모든 것이 대개 권력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도로명 주소는 권력의 흐름이 오랜 세월에 걸쳐 남긴 흔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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