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된 일기장, 한정판 잡지..당신이 간직하고 싶은 책은?[BOOKS]

이용익 2021. 12. 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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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거나 집을 정리할 때 가장 골치 아픈 물건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이 질문에 책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만큼 책은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기에 오늘날에는 부동산과 직결되는 사치품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책은 소중한 추억을 남겨줄 수 있고, 시간에 맞서 보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볼 가치가 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이 '재영 책수선(실명 배재영)'이 개입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북아트'와 '제지(Paper making)' 분야를 익힌 그는 책을 비롯해 다양한 지류를 수선한다. 다시 말하면 책의 기억을 관찰하고 보존하는 역할이 그의 직업인 셈이다. 그리고 재영 책수선을 찾아 오래된 책을 수선하고 아끼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다.

그러니 이 책은 읽은 책에 대한 감상문도, 좋은 책을 알리는 추천사도 아니다. 의뢰인의 추억이 담긴 책을 소개하고, 책이 수선돼 재탄생하는 과정을 충실히 기록할 뿐이다. 종이와 풀 등으로 이뤄진 책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에서 의뢰인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춰 책을 다시 만드는 일은 단순히 원상태로 되돌리는 복원이 아니라 폭넓은 관점에서 수선이 된다.

아무래도 익숙한 직업도 아니다 보니 칼 쓰고 풀 바르는 법 외에 사업자로 등록하고 임대보증금을 보호하는 법, 해시태그를 이용해 작업물을 홍보하는 법까지 배워야 했다는 저자의 말이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수선해서 간직하고 싶은 책이 한 권씩 떠오르기를 바란다"는 말대로다. 책 이상의 의미를 지닌 책들과 그 사연을 보면서 나에게 소중했던 책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수선을 맡은 책도 그리고 책이 망가진 이유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한국전쟁 때부터 써오던 70년이 넘은 일기장,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성경책, 귀퉁이가 찢어진 한정판 잡지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또 책이 망가진 원인 역시 온갖 낙서와 구겨짐, 찢김, 햇빛에 의한 변색, 심지어 엎질러진 음식물과 곤충 배설물까지 가지각색이다. 그럼에도 그런 각자의 서사가 있기에 자신만의 아름다움도 갖게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각자의 이야기만큼이나 섬세하게 촬영한 사진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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