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13년째 표류.. 올해도 무산 유력

이정수 기자 2021. 12. 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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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복잡해 보험료 청구 포기율 47.2%
30만원 이하 소액 청구 포기율은 95.2%
보험업계 "소비자 편의성 위해 개정 진행해야"
의료업계 "환자 정보 악용 우려 및 의료민영화 진행될 수도"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법안이 올해도 통과되지 않을 전망이다. 햇수로만 13년째다. 지난 2009년부터 청구 전산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있었으나 의료계 반발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3일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역시 법안 통과는 어려워 보인다”며 “내년에도 과연 가능할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관련 법안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의료계 등의 동의가 필요한데, 반대가 완강하다는 설명이다.

실손보험 전산화 둘러싼 보험업계, 의료업계의 입장 차이/ 그래픽=이은현

현재 실손보험료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병원에서 종이서류를 발급받은 뒤, 팩스·이메일·우편 등의 방법으로 보험사에 직접 청구해야 한다. 2018년 기준으로 실손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종이서류를 발급한 비율은 거의 100%에 이른다. 종이서류 외 병원전산망과 연동된 앱으로 청구한 경우는 0.002%다.

이에 따라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소비자단체 ‘소비자와함께’ 등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1000명 중 ‘청구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중은 47.2%로 나타났다. 30만원 이하의 소액청구건과 관련해서는 포기율 95.2%를 기록했다. 10명 중 9명 넘게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셈이다.

지난 2019년 한국갤럽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손보험료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로는 ‘불편함(44.0%)’을 꼽았다. 종이로 된 서류를 마련해서 일일이 직접 수기로 작성하고, 보험사에 제출해야 하는 절차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어 실손보험료 청구 시 전산 청구 시스템을 선호한다는 의견은 89.9%로 나타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보험사 모두를 위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손 보험료 청구가 복잡하다 보니 소비자는 불편함을 느끼고, 보험사 또한 업무에 소비하는 인력·재원 등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한 손해보험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실손보험료를 청구하기 위해 약 4장의 서류를 발급받아야 한다”며 “일 년에 청구되는 전체 건수가 1억건 정도임을 감안할 때, 발급되는 종이 양만 4억장에 이른다”고 했다. 이어 그는 “디지털 시대인 만큼 종이 서류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손보험 전산화 관련 21대 국회 개정안/그래픽=이은현

이러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제20·21대 국회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관련 개정안을 각각 3건, 5건을 발의했다. 세부 사안에 따라 차이점은 존재하나 모두 종이 문서 대신 전자서류를 통해 보험 청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계는 이와 같은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실손보험 청구가 전산화로 바뀔 시, 보험사 등에 개인의료정보가 축적되니 의료기관이 하위 계약자로 전락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전산화 전환 시에 필요한 자금이 막대하고, 민감한 환자의 의료 정보를 축적할 경우 목적에 비해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지난 9월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5개 의료 단체는 위와 같은 주장이 담긴 입장문을 내놓았다. 의료 단체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보건당국의 규제와 심의 대신 금융당국의 규제만 받고 있어 부작용이 심화돼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의료정보의 전산화와 개인의료정보가 보험사에 축적되면 의료민영화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오히려 보험사가 환자 정보를 근거로 들어 보험금 지급, 가입 및 갱신 등을 거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입장에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관련 법 규정 등을 내걸며 의료계의 주장이 타당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의료법 제21조 제5항을 보면 의료기관은 환자 요청 시 기록을 전자문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확인하게 할 수 있다”며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청구 전산화를 하자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국민 3800만명이 가입한 보험인 만큼, 개정이 늦어질수록 관련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이번 12월 내에 열리는 법안소위에서 다시 한 번 다뤄질 전망이다. 손해보험 관계자는 “의료계의 반발이 거센 만큼, 연내 통과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개정안이 통과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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