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여산양조장' 안주인의 '착한 장보기'

기자 2021. 12. 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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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여산면에 '여산양조장'이 있습니다.

2대에 걸쳐 63년째 막걸리를 빚고 있는 양조장입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양조장의 경기는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내내 생존 절벽으로 몰렸던 자영업자들이 겨우 되찾은 '장사할 권리'를 자칫 다시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양조장 안주인이 보여준 따스한 마음과 선한 소비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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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여산면에 ‘여산양조장’이 있습니다. 2대에 걸쳐 63년째 막걸리를 빚고 있는 양조장입니다. 양조장은 대를 이어 다섯 남매 중 셋째 최형진(66) 씨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말이 ‘운영’이지, 겨우 적자나 면하는 상황이어서 ‘버티고 있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겁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양조장의 경기는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집안 대소사에 막걸리가 빠지는 법이 없었으니까요. 초상이 나면 문상객을 대접할 술부터 맞춰야 하니, 동네의 부고를 양조장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양조장에서는 항아리 서른 개를 돌려가며 술을 빚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항아리 딱 두 개로 그것도 띄엄띄엄 술을 빚고 있는 처지이니 다 지나간 얘기입니다.

최 씨의 얘기를 듣다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7년 전 92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였습니다.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양조장 살림을 챙겼던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장에 나무를 사러 가는 일만큼은 늦장을 부리셨답니다. 열 개 아궁이에 술밥을 짓고 직원 열댓 명의 밥을 해대느라 하루 나무 열 단이 모자랄 지경이었는데, 늘 장이 파할 때쯤에야 나무를 사러 가셨다고 합니다. 궁금해서 최 씨가 물었더니 “저물녘까지 나무를 다 못 판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나무를 사주려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는군요. 다 팔지 못한 나무를 다시 지고 돌아가야 했던 나뭇짐 장수의 서러운 마음을 술도가의 안주인은 헤아렸던 것입니다.

단계적 일상회복의 와중에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폭증하고 신종 변이 바이러스까지 출현하면서 또다시 사회적 거리두기와 사적 모임 규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내내 생존 절벽으로 몰렸던 자영업자들이 겨우 되찾은 ‘장사할 권리’를 자칫 다시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양조장 안주인이 보여준 따스한 마음과 선한 소비를 생각합니다.

최 씨는 그가 ‘고 선생’이라 부르는, 50년 동안 함께 일해온 공장장 고석식(68) 씨와 단둘이 술을 빚고 있습니다. 최 씨는 ‘둘 중 하나가 쓰러지면 그걸로 끝’이라며 웃었습니다. 일은 고되고 돈이 될 리도 없는 일이지만, 그는 생전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여산 막걸리 한 통의 가격은 800원. 20년 전 가격을 고수해 오다가 최근에야 50원을 올린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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