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오징어 게임' 시대

아이즈 ize 홍수경(칼럼니스트) 2021. 12. 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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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홍수경(칼럼니스트)

사진=/AFPBBNews=뉴스1

'오징어 게임' 제작진이 뉴욕에서 개최된  '고담 어워즈'에서 신작 TV 장편 시리즈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인기를 현실에서 실감했다.

함께 후보에 올랐던 작품들도 만만한 상대들은 아니었다. '노예 12년'과 '문라이트'로 각각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던 스티브 맥퀸 감독의 '스몰 액스'와 배리 젠킨스 감독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도 막강 후보들이었다. 영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뉴욕의 유서깊은 독립영화 시상식의 신작 TV 부문에서 경쟁을 한다는 점도 흥미롭고, 한국에서는 비교적 고비용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이 미국의 저예산 TV 시리즈로 후보에 합류했다는 점도 아이러니컬하다.

한 해를 빛낸 최고 독립영화들의 각축장인 '고담 어워즈'는 2015년부터 TV 시리즈 부문을 신설해 TV 창작자들의 새로운 이야기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치하해왔다. '미스터 로봇' '아틀란타' '킬링 이브' '왓치맨'같은  걸작 드라마들이 역대 수상작 리스트를 채운 가운데 올해는 '오징어 게임'이 주인공이 되었다. 비영어권 드라마로서는 첫 수상이다. 주연배우 이정재는 올해 처음으로 시도된 '젠더 중립' 신작 TV 시리즈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남녀 성별 구분을 없앴으니 국적과 언어 구분도 무의미하다. 더불어 넷플릭스, 아마존, 디즈니 플러스 같은 더빙과 자막 기술을 갖춘 글로벌 OTT 플랫폼의 성장으로 미국 시상식은 더 이상 '미드'와 '영드'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 시상식의 본상 부문에 출품하려면 미국 회사가 공동 제작하거나 배급해야 하는 조건이 붙지만, OTT 플랫폼 작품이라면 이런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제 한국 콘텐츠는 미국 에미상까지 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포스트 '오징어 게임'의 양상은 어떻게 될까? 11월 19일에 공개된 '지옥'은 넷플릭스 발표에 따르면 구독자 시청 시간이 1억 1100만 시간으로 전세계 11월 시리즈 시청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시청 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여전히 '오징어 게임'이 1위다. '지옥'은  '부산행'으로 북미 장르 영화팬 사이에서 명망이 높은 연상호 감독의 신작인 점에 비해 북미 반응이 눈에 띌만큼 뜨겁지 않다. 평론가들의 반응을 집계하는 '로튼 토마토' 사이트에서 100퍼센트 신선도 지수를 유지하고 있지만 호러 전문 매체가 아닌 주요 매체의 리뷰는 느리게 업데이트되고 있다.

'지옥',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런 평가에 상관없이 '지옥'은 넷플릭스가 주력하는 장르 중 하나인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 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몇 년 전 넷플릭스에서 갑작스레 화제가 되었던 '버드 박스'나 지금도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는 '로크 앤 키'도 이 장르에 속한다.  '부산행'이 기차 배경을 더해 좀비물의 전설이 된 것처럼, '지옥' 또한 불가의한 존재나 힘을 마주하게 된 인간의 공포와 나약함에 주목하는 기본 장르 설정에 한국의 현실적인 사회 드라마를 뒤섞은 독창적인 이야기를 선보인다. 데스 게임 장르로 출발한 '오징어 게임'과 더불어 '지옥'은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메인 상품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넷플릭스는 2021년 8월 이후로 매달 신작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고 대개는 안타 내지 홈런을 치는 상황이다. 오리지널이 아닌 TV 방송국과 제휴하는 드라마까지 합치면 한달에 공개되는 한국 드라마 편수는 영어권 드라마와 비슷하다. 이제는 신작을 공개하는 첫 디스플레이 화면에 한국 콘텐츠가 빠지면 이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다른 외국 OTT 플랫폼도 한국 콘텐츠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몇 년 전부터 제작에 참여해왔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한국 스튜디오의 성장은 2000년대 한국 영화계를 지휘했던 영화 제작사들의 시대를 환기하게 만든다.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가 질적, 양적으로 급성장을 하며 세계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20여년 동안 쌓아온 콘텐츠 제작의 저력이 이제는 OTT 플랫폼과 함께 한국 드라마의 시대를 열고 있다. 한국영화가 알려지던 시절부터 독창적인 스토리 아이디어는 일찌감히 세계적인 인정을  받아 할리우드 리메이크 판권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제작비 대비 품질이 훌륭한 상품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2017년 '버라이어티'에 공개된 미국의 하이엔드급 드라마의 한회당 제작비가 500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 수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회당 2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의 제작비는 미국 입장에서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팬데믹 시기에 전세계의 제작 현장이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고 제작비도 상승해 메이저 스튜디오를 제외하고 콘텐츠 제작이 힘겨워지는 가운데, 한국의 영화 제작 편수와 드라마 제작 편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12월24일 공개될 화제작 '고요의 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고담 어워즈에서 수상 소감을 말했던 황동혁 감독과 김지연 제작사 대표는 '오징어 게임'에 대한 세계적 성원을 두고 '기적'이라고 칭했다. 그 기적의 맥락은 최근 윤여정 배우가 청룡영화상 무대에서 인용한 자신의 인터뷰를 통해 추론이 가능할 것같다. "우리는 언제나 늘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지금 우리에게 갑자기 주목할 뿐"이라는 그의 말은 연상호 감독의 '타임' 인터뷰와도 이어진다. 한국 콘텐츠의 갑작스런 부상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한국은 지난 10년에서 15년 간 고품질 영화와 드라마로 세계 관객들에게 신뢰를 쌓아왔기에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고 답했다. 수십년간 수많은 한국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이정재는 미국의 가장 지적인 토크쇼인 '스티븐 콜베어 쇼'에 등장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최근에 찍은 셀피를 공개했다. 질문에 앞서 "당신은 한국에서 유명한 스타이지만"이라고 세심하게 운을 떼었던 콜베어는 한국에서 이정재의 위치가  디카프리오에 못지 않다는 걸 은연 중에 알리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동안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에게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급작스러울지 몰라도 K콘텐츠에 대한 주목은 거품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포스트 '오징어 게임' 시대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오징어 게임'과 '지옥'의 성공이 더 많은 창작자들이 실력을 펼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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