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베드로 성당에 새긴 열정.. 일흔 이후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20년'

나윤석 기자 2021. 12. 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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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백발과 나의 고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노인이고, 죽음은 내게서 청춘의 꿈을 빼앗아간다."

르네상스 시대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가 일흔을 앞두고 끼적인 시편(詩篇)이다.

오랜 후원자인 교황과 조카손자, 하인의 죽음으로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으나 미켈란젤로는 성당 건축을 향한 헌신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죽음 이후 공사는 90년 이상 계속됐지만, 후대인들은 성 베드로 성당을 '미켈란젤로가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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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나의 백발과 나의 고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노인이고, 죽음은 내게서 청춘의 꿈을 빼앗아간다.”

르네상스 시대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가 일흔을 앞두고 끼적인 시편(詩篇)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영묘(陵墓·위인의 영혼을 모시는 묘지) 작업을 끝낸 뒤 “난생처음 할 일이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졌다”고 느낀 터였다. 가까운 친구와 친동생의 죽음도 허무감과 우울을 부추겼다. 이때만 해도 미켈란젤로는 알지 못했다. 생애가 ‘종착역’을 향해 가는 듯하지만, 실은 예술가 인생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최종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는 것을.

‘미켈란젤로 권위자’인 윌리엄 E 월리스 워싱턴대 석좌교수가 쓴 책은 바로 이 말년의 ‘최종 단계’를 조명한다. 그동안 많은 비평가와 대중은 ‘바쿠스’ ‘로마 피에타’ ‘다윗’ 등 걸작을 쏟아낸 미켈란젤로의 생애 전반기에 비해 ‘황혼 이후의 삶’은 덜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다. 10여 년 전 미켈란젤로 전기를 펴낸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만년(晩年)’ 역시 청년기 못지않게 위대한 성취를 이룬 시기였음을 깨달은 저자는 미켈란젤로가 일흔이 된 1545년부터 89세로 사망한 1564년까지 ‘마지막 20년’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마지막 20년’의 중심엔 1505년 이후 40년간 건축이 진행된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있었다.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이 성당 건축을 요청한 건 1546년. 미켈란젤로는 처음엔 “건축은 전문 영역이 아닐뿐더러 나이가 너무 많다”며 고사했다. 더욱이 건축가가 6번이나 교체된 40년 동안 그는 작업에 일절 관여한 적이 없으며, 살아생전 완공될 가능성도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거듭된 설득을 뿌리치지 못했다. 어쩌면 성당 건축을 결심한 순간 그는 느꼈을지 모른다. 노령과 절망, 죽음에 굴복하지 말아야 할 최선의 이유가 생겼다는 것을. 소명을 받들어 ‘하느님의 건축가’로 구원받을 기회라는 것을.

미켈란젤로는 먼저 오랜 세월 여러 건축가가 참여하며 ‘산으로 간 도면’을 복원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성당 내부로 빛이 쏟아지도록 ‘외곽 회랑’을 제거했고, 돔을 지탱하는 부벽을 강화했다. 여기에 ‘2열 기둥’이라는 독특한 공법으로 구조적·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현장 인력들도 인문주의자의 ‘책상물림 지식’이 아닌 장인의 ‘실무적 지식’에 탄복했다. 오랜 후원자인 교황과 조카손자, 하인의 죽음으로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으나 미켈란젤로는 성당 건축을 향한 헌신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눈 감았다. 그의 죽음 이후 공사는 90년 이상 계속됐지만, 후대인들은 성 베드로 성당을 ‘미켈란젤로가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기억한다. 수정할 수도, 수정할 필요도 없는 설계를 만들고 떠났기 때문이다. 바티칸에 우뚝 선 성당의 돔은 어느 방향에서도 8개의 버팀살이 뚜렷이 보인다. 숫자 ‘8’은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을 의미하고, 하늘로 솟은 돔은 천국을 은유한다. 저자는 천국으로 올라가 별이 된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헌신을 이렇게 평가한다. “수확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다른 시대’를 위해 씨앗을 심는 농부의 심정으로 전력한 작업이었다.” 492쪽, 2만5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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