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공공성(KPOPS) 추구하는 건축가 곽희수(上)

효효 2021. 12.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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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109] 한국인에게 1950~1970년대 '다방'을 기원으로 한 '카페'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쉬고 놀고 수다 떠는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인 평균의 주거환경이 되어버린 아파트는 여전히 '닭장'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거주의 수단보다는 재산 가치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소유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아파트는 기능성 중심의 용도에도 불구하고 불과 수십 년 전 마당을 가운데 놓고 여러 가구가 생활하던 DNA를 가진 한국인에게 종종 외부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추동한다. 그 탈출구의 대상 또한 카페나 펜션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건축물이다. 현대인에게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몇 시간의 과정이 휴식이 되어버렸다.

사드 배치에 따른 국제 정치적 문제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최근 수년간 서울 일원에 지어진 호텔이 텅텅 비어 도산하고 있는 반면 대도시 외곽에는 대형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골프장 또한 코로나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수원 르디투어 전경/ 사진 제공=이뎀건축사무소
베이커리 카페 르디투어(Le Detour·2019~2020)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산 바로 앞에 위치한다. 이 건축물은 많은 카페가 접근성과 대기업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우는 관습적인 접근에서 탈피한다. 사람과 커피, 건축이 만나는 독립적(independent)·대중적 카페에 대한 곽희수 간축가의 제안이다.

건축가는 이 카페의 콘셉트를 '환대(hospitality)'로 정했다. 집주인(host)이 손님을 초대하듯 건물 앞에 소정원을 마련하고 입구로 이어지는 접근로를 길게 풀었다. 수(水) 공간과 계단형 평상 또한 여기에 걸맞은 장치다.

리셉션 공간을 지나 독특한 아우라의 제빵실을 겸비한 판매 공간에서 빵과 커피를 받아 위층으로 향하면 모든 층이 한눈에 담기는 보이드(void)와 얼기설기 얽힌 순환형 계단을 만난다.

수원 르디투어 내부 / 사진 제공=이뎀건축사사무소
높이 150㎜, 폭 300㎜ 계단 하나하나는 플로어(floor)이다. 이곳의 다층적 구조는 비탈에 눕고, 앉고, 서는 행위를 가능케 한다. 전체 바닥이 계단으로 된 옥상에서 방문자는 한겨울에도 전기코일을 넣은 온돌 개념을 적용한 평상에 앉아 바람을 느낄수 있다. 르디투어의 부제가 '계단정원'인 이유다. 온돌은 실내 공간 사용의 한계를 외부 로 확장했다. 마치 실내 온천욕을 하다 노천욕 공간으로 옮겨간 느낌이랄까.

층 중간 메자닌(mezzanine)에 위치한 넓은 콘크리트 평상은 한국인이 본래 가진 좌식 생활 습관을 적용해 디자인했다. 계단과 일체화된 평상은 각각 높낮이가 달라 주변 경관을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과거와 단절된 한옥과 같은 어설픈 전통보다는 달동네 구멍가게 앞에 수평도 맞지 않는 평상과 같은 생활 민속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현대에 맞게 소화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출한다.

부산 기장 웨이브온 / 사진 제공=이뎀건축사사무소
르디투어에 앞서 연면적 495㎡(150평) 남짓한 부산 기장의 카페 웨이브온(Waveon·2015~2016)은 하루 3000명, 연간 90만명(추정)의 사람을 불러모은다. 웨이브온은 언뜻 날아다니는 듯 보이는 곽희수 작품의 전형이다.

가장 밑 구조물은 대지에 맞춰 수평으로 배치했지만 상층부 구조물에서는 지표면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표현했다. 각도를 달리해 포개 쌓은 두 개의 구조물은 바다 풍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하도록 했다. 중간중간 공간을 비워 전망에서 소외된 내부 공간이 없도록 배려했다. 웨이브온의 오픈 이후 주변은 카페촌이 형성되었다.

'웨이브온'은 2017년 세계건축상(WA),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본상을 받았다.

교외형 휴식 공간은 도심형 카페처럼 주변에 갤러리와 같은 문화 공간, 패션숍, 고급 레스토랑 등 다양한 업종이 분포하지 않고 동일 업종이 몰리는 폐단을 가져와 해안가 좁은 도로에 적체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홍천 유리트리트 / 사진 제공=이뎀건축사사무소
강원도 홍천군 서면 유리트리트(U RETREAT·2014~2016)는 자갈길과 시냇물을 지나 울창한 숲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만난다. 자연이 인간을 안아주는 형태와 당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U'에 피정,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의미하는 '리트리트'라는 뜻을 담았다. 철근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외관, 입체적인 3D형 구조, 낮은 둔덕에 위치한 정원은 자연과의 공존 태도를 유지하는 곽희수의 건축 철학을 표현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의 20여 년 이래 펜션으로서는 처음으로 충남 태안 안면도의 모켄(Moken) 펜션이 2012년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펜션도 작품'이라는 공식이 일반화되었다. 모켄 펜션은 주변에 논과 밭뿐인 야산 자락에 위치해 대부분 수려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몫 보는 다른 펜션들과는 달랐다.

과거 철도 중심의 교통망은 역과 역을 점과 점을 잇는 듯한 교통수단이었다. 철로변은 발전이 생략된 채 역사(驛舍)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자동차 대중화 시대, 내비게이션의 발전은 좌표를 찍어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식이 열차 시대와 유사하다.

확장된 개념의 캔틸레버와 필로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베어런의 낙수장(Fallingwater·1939)으로 대표되는 프랭크 라이트(Frank Lloyd Wright·1867~1959)의 작품은 과장된 장식보다는 간결한 형태를 추구하면서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꾀해 '유기적 건축'으로 특징되어진다.

널찍한 철근콘크리트 발코니를 기둥 없이 건물 앞으로 내민 캔틸레버(cantilever·외팔보) 구조도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

곽희수는 낙수장을 연상케 하는 주변 환경과 캔틸레버 구조를 유리트리트의 숙박동 1층과 2층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도록 적용했고 그 대부분을 유리로 감쌌다. 이는 개별 숙소마다 색다른 전망을 제공하면서 외부 시선에서 차단된 공간을 만끽하도록 한 설계다. 하중을 분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둥들은 객실 내부로 집어넣어 높은 천장과 어울려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를 연출한다.

현관이나 개발 시대 하천을 활용한 고가 다리 밑과도 같은 레트로(retro)를 불러일으키는 공간 구조를 확보해 주는 캔틸레버는 햇빛과 빗줄기를 차단하는 전통 한옥의 처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유리트리트는 차 하나 오갈 도로를 사이에 두고 100m가 넘는 수직 절벽을 마주하고 있다. 24시간 계곡물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바로 코앞에 홍천강의 지류가 흐른다.

경기도 가평군 청평 게스트하우스 리븐델(Guesthouse Rivendell·2011~2012)의 용도는 주택이자 숙박시설이다. 애초에는 건축주가 주택으로 설계를 의뢰했으나 시간이 흐른 후 건축물의 쓰임새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일부 공간을 방문객용 숙박시설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리븐델'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당시 세계적 선풍을 불러일으킨 영화 '반지의 제왕'의 영향이다. '리븐델'은 가장 아름다운 존재들이 머무는 곳, 인간과 요정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로맨틱한 공간으로 묘사되었다.

청평 게스트하우스 리븐델 / 사진 제공=이뎀건축사사무소
게스트하우스 리븐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공중으로 툭 튀어나온 필로티다. 필로티는 곽희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설계는 '강가에 놓인 자갈(磯)'이라는 개념에서 시작됐다. 자연물에서 영감을 얻되 일상적인 개념을 살짝 비틀어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콘셉트를 적용했다. 자갈의 느낌은 표현하되 그 세부적인 형태 등은 도시적인 느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곳으로 잡아내는 랜드마크를 만든 것이다.

펜션의 경쟁력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활용했는지다. 불필요한 시선을 막거나 볼 만한 경치를 적극 수용하면서 기능성을 강화한 건축이 되며 '자연과 건축물이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 푸아시에 위치한 빌라 사보아(Villa Savoye·1929)는 르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의 5원칙(필로티 Pilotis·옥상 정원 Roof Garden·자유로운 평면 Free Plan·수평창 Horizontal Window·자유로운 입면 Free Facade)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적용된 필로티는 40여 년이나 앞서 미래의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대비한 주차 공간의 확보라는 의미와 함께 사적 공간을 이웃 주민에게 내어놓는다는 현대 건축의 철학을 반영한다.

본성이 땅에서 난 재료인 콘크리트를 최소한 접지만으로 허공에 띄운 확장된 개념의 캔틸레버와 필로티는 기술 발전 속도만큼 시대에 따라 땅을 비우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건축 언어가 되었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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