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새긴 상처, 70년대 여성 운동권 현대사

김은형 2021. 12. 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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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운동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진중권 등 일부는 '민주화 세대'가 기득권화·권력화 되었다고 비판하지만,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대로 이런 비판은 한줌의 사람들, "서울대(서울 지역) 출신 남성 극소수"에 해당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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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안이희옥 지음 l 열린책들 l 1만4800원

그 많은 ‘운동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진중권 등 일부는 ‘민주화 세대’가 기득권화·권력화 되었다고 비판하지만,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대로 이런 비판은 한줌의 사람들, “서울대(서울 지역) 출신 남성 극소수”에 해당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1세대 페미니스트 작가 안이희옥의 연작소설집 <안젤라>는 한줌 바깥 사람들의 행방에 대한 단초를 담고 있다. 연작 단편 7개를 묶은 이 작품집은 72학번 운동권이었던 작가 자신을 비롯해 독재와 싸운 ‘여성’들의 몸에 새겨진 역사를 관통한다.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 민주화 투쟁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통시적 사건들을 씨줄로 삼고, 집과 동네에서 생활한 미시적 시간들을 날 줄로 삼아”(작가의 말) 완성한 가슴저릿한 ‘운동권’ 여성 현대사다.

작가는 ‘나선형 회전 거울’에서 한국전쟁으로 고통받은 부모 세대와 유신 반대 투쟁에 나선 ‘나’를 교차 서술해가며 ‘안젤라’라는 화자를 꺼낸다. 소설과 에세이, 역사와 허구를 넘나드는 작품 안에서 안젤라는 작가 자신이면서 작가가 들여다보는 70년대 학번 운동권 여성이다. 유신체제와 싸우다 고문 당하고 후유증으로 40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여성, 무너진 가족의 생계를 감당하기 위해 발버둥친 여성, 가부장적 사회뿐 아니라 함께 싸웠던 남성들에게도 멸시받으며 페미니즘에 눈을 뜬 여성, “순진하다 못해 무심하기 짝이 없”는 열정만으로 불의와 싸우다 나이 들어 궁핍과 싸워야 하는 노년 여성이 ‘안젤라’로 표상된다.

안젤라 주변에는 연화, 판도라, 아녜스, 청이, 평이, 송이 같은 친구들이 있다. 모두 젊어서 치열하게 세상과 싸웠지만 이제 가난에 시달리거나 병마와 싸운다. 젊은 시절 실수로 낳아 입양 보낸 아이를 티브이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도, 우연한 사고로 총기를 잃고 일곱살 아이로 돌아간 친구도 있다.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를 몸에 새기고 초로의 나이가 되어 묵묵히 오늘의 현실을 걸어간다.

“제 간절한 소원은요, 더는 경제적으로 몰락하지 않고, 건강 관리 잘하고, 좋은 소설 써내고, 형제들과 잘 지내고, 이웃들과 화해롭게 살면서, 노년을 평화롭게 보내다가, 무사히 떠날 수 있게 해주십사 하는 거예요.” 노년의 화자는 기도한다. 어쩌면 그가 젊은 시절부터 직업과 목숨까지 걸고 싸우며 꿈꾼 사회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런 바람이 얼마나 가능한 사회에 도달했을까. 씁쓸하지만 되씹고 다시 새김질해야 하는 작가의 전언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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